Travel/Overseas

2023 남미 여행 [Day.14]

무소의뿔 2023. 4. 29. 01:43

23. 4. 23. 일요일

산티아고 공항에서의 밤샘은 체력적으로 정말 쉽지 않았다. 세시까지는 그래도 밀린 여행일지를 정리하고 오랜만에 친구들과 카톡으로 환담을 나누면서 어찌저찌 버틸 수 있었는데,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서 부랴부랴 체크인을 하고 공항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래도 잠을 자려면 체크인을 하고 난 뒤가 안전할테니 말이다.

그 와중에 또 배는 고파서 맥도날드에서 버거 세트를 주문해서 먹었다.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물가다. 작은 햄버거에 감자튀김 그리고 콜라 세트가 우리나라 돈으로 거의 만원에 육박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패스트푸드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느끼는데, 칠레는 한 술을 더 뜬다.

벤치에서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비행기를 기다렸는데, 지연이 발생해서 1시간 정도 더 늦어졌다. 탑승권에 기재된 항공편과 안내 스크린에 뜨는 항공편의 목적지가 서로 달라서 뭐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타는 비행기는 결국 푸에르토 몬트를 들려 푼타 아레나스로 가는 항공편이었다. 탑승권에는 푸에르토 몬트가 별도로 언급이 안 되어 있고 엉뚱한 도착 시간이 적혀 있었는데, 나는 이게 푼타 아레나스로 가는 직항편으로 바뀐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아니었던 것. 괜히 줬다 뺐는 것 같아서 은근 부아가 났다.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국내선 항공편이라 그런지 빈 좌석이 많았다. 내 열에 아무도 승객이 없어서 이륙을 끝내고 팔걸이를 제치고 아예 누워서 하늘을 날아왔다.

경유를 처음 해 보니 이런저런 새로운 경험들을 많이 한다. 푸에르토 몬트에서는 아예 기내를 벗어나지 않고 대기하다가 바로 푼타 아레나스로 출발했다. 결국 세 번의 랜딩을 거쳐서 간신히 푼타 아레나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푼타 아레나스에서도 수난은 계속되었는데,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가는 버스 예매라는 관건이 남아 있었다. 온라인 예매 사이트에서 직접 버스표를 끊어야 하는데, 인터넷이 느려서 페이팔 결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1시 버스가 이미 예약 마감이 되어 버렸고, 할 수 없이 2시 버스로 예매를 하고 공항 내 식당에서 간단히 요기를 마쳤다. 물론 가격은 그리 간단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식사를 마치고 일정을 이리저리 점검하다가 문득 항공편 안내 스크린을 보았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핸드폰에 표시된 시각과 스크린에 표시된 시각이 서로 다른 것이었다!!! 스크린 기준으로 1시간이 더 빨랐는데, 언젠가 가이드북에서 파타고니아는 같은 경도이지만 1시간 앞당긴 시각을 기준으로 한다는 이야기를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 그렇게 14 달러를 주고 예매한 2시 버스를 그대로 날려버렸고, 다시 3시 버스를 예매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3시 버스는 탈 수 있었다. 푸에르토 나탈레스까지는 3시간이 넘게 걸리는 여정이다. 도착하면 해가 어둑어둑 질 준비를 하고 있을테지. 어제부터 시작해서 24시간이 넘도록 대륙을 이동만 하고 있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몹시 피곤한데, 내일 바로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을 시작해야 한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도착하면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이다. 우선, 버스 터미널에서 토레스 델 파이네 행 버스를 예약해야 하고, 바로 환전소에서 페소 환전을 해야 한다. 그리고 숙소에 체크인한 후 지난 이틀 동안 못한 샤워를 정성들여 할 것이고, 트레킹에 필요한 각종 물품과 국립 공원에서 먹을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 숙소에서 예매해 둔 산장과 입장 티켓도 출력해 두어야 한다.

머릿속으로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점검하면서 파타고니아를 관통하는 Bus Sur를 타고 간다. 드넓게 펼쳐진 평야에 드문드문 초식 동물들이 떼지어 다닌다. 차창 안의 내 속도 모르고 이 곳 파타고니아는 참 평화롭기만 하다.

드디어 저녁에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도착했다. 나탈레스는 작은 항구 도시이고 고즈넉하고 황량했다. 가을을 맞은 파타고니아의 정취를 물씬 풍겨왔다. 짐을 챙겨 예약해둔 호텔로 이동한다. 버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는 약 20분을 걸어야 한다.

푸에르토 나탈레스는 토레스 델 파이네 투어를 위한 거점 도시라서 그런지 물가가 아주 비쌌다. 특히 숙소 가격도 만만치 않았는데, 남미 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10만원에 달하는 숙박비를 지불했다. 그래도 비싼만큼 시설을 만족스러웠다. Big Sur 라니, 왠지 매킨토시가 갑자기 생각나는 이름이다.

체크인을 마치고 오랫동안 못 했던 샤워를 우선 했다.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니 여독이 씻기는 기분이다. 짐을 정리하고 우선 저녁을 먹으러 거리로 나서본다.

가이드북에도 소개된 ‘마사이’라는 피자 가게인데, 꽤 괜찮은 피자를 내왔다. 치즈가 듬뿍 올라가서 든든했다.

생맥주를 한 잔 곁들여 본다. 시원하고 목넘김이 좋다. 나탈레스의 모든 카페와 식당은 토레스 델 파이네로 가기 위한 여행자들로 북적였다. 나탈레스에 원래 사는 사람보다 여행자가 더 많은 느낌이다.

근처 렌탈 샵에서 트레킹을 위한 장비를 빌렸다. ‘Rental Natales’라는 가게였는데, 여기서 침낭과 등산 스틱, 그리고 타월을 빌렸다. 3박 4일 간의 렌탈료는 미화 68 달러. 칠레 물가는 비싸다. 나탈레스까지 이동하느라 고생했으니, 오늘은 푹 쉬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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