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Overseas

2023 남미 여행 [Day.4]

무소의뿔 2023. 4. 14. 04:23

23. 4. 13. 목

여독으로 피곤했는지 일찍 잠에 들고 또 일찍 깼다. 쿠스코는 고산지대여서 그런지 일교차가 정말 크다. 밤에 자는 내내 추워서 덜덜 떨었다. 그래도 중간에 깨지 않고 통잠을 잘 수 있어서 오랜만에 제대로 숙면을 취한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일찍 샤워를 하고 나갈 채비를 마친 후 쿠스코 역사 지구로 향했다.

역사 지구의 중심인 아르마스 광장. 아직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광장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쿠스코 대성당, 남쪽에는 라 콤파니아 데 헤수스 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대성당은 10시까지는 미사 때문에 출입이 안 되는데, 입장료가 50솔로 상당히 비싸서 들어가지는 않았다.

대성당 뒤편으로는 잉카 박물관이 있다. 잉카 유물들을 전시해 놓았는데, 세계사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장신구와 토기들이 즐비한 게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선사한다.

광장에서 남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코리킨차라는 유적지가 나온다. 원래는 잉카인들의 사원이었는데, 피사로의 잉카 정복 이후 예배당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건물의 아랫부분은 잉카 양식의 돌벽이고, 위로는 스페인 양식의 벽이 공존하고 있다. 잉카는 철기 문명에 진입하지 않아서 돌을 자르고 가공하는 기술이 발달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대신 돌의 모양을 맞춰 흐트러짐 없이 벽을 쌓는 기술이 발달하였는데, 시멘트를 전혀 쓰지 않고도 이 정도로 견고한 돌벽을 쌓아올렸다는 게 참 신기했다.

쿠스코 역사 지구에서 꼭 들려야 할 필수 코스인 잉카 12각 돌도 찾아갔다. 절묘하게 각이 맞아서 다른 돌들과 조화를 이루어 벽으로서 기능하는 모습이 잉카 석조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커플 관광객에게 부탁하여 기념 사진을 남겨보았다.

다음으로는 쿠스코의 중앙 시장 격인 ‘산 페드로 시장’을 둘러보았다. 다양한 페루 전통 문양의 공예품, 음식, 과일, 고기 등 시장이 갖추고 있어야 할 모든 것들을 갖추고 있었다. 남미 특유의 공예품들이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짐이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아서 참았다.

시장에 온 기념으로 할머니가 즉석으로 만들어주는 과일 음료를 한 잔 주문해서 마셨다. 루꼬모 쥬스를 마시고 싶었지만 재고가 없다고 해서 오렌지와 파인애플을 갈아 만든 쥬스를 골랐다. 풍토가 다르니 오렌지 맛도 다른 게 신기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큰 오렌지가 아니라 작은 방울토마토 사이즈의 오렌지였다.

점심으로는 페루식 레스토랑에 들려 ‘꾸이’를 주문했다. 꾸이는 기니피그를 조리한 요리인데, 기니피그라 그런지 약간 누린 맛이 나긴 한다. 그래도 양고기에 비하면 훨씬 덜하니 참고 먹을 만하다.

배를 채웠으니 ‘산 블라스’ 전망대로 향한다. 여기서 쿠스코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고 한다. 고산 증상이 있어서 오르막을 오르는 게 쉽지 않았지만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전망대에 도착했다. 그리고 전망대에서 바라본 쿠스코 전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역사 지구의 다양한 유적이나 전시보다 산 블라스 전망대에서 바라본 쿠스코 전경이 훨씬 눈에 깊게 남았다.

탁 트인 시야에 넓게 펼쳐지는 안데스 산맥과 그 아래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들. 평화로운 쿠스코의 일상을 보여주는 듯하다.

귀여운 알파카를 데리고 나온 아주머니. 아주머니는 사진을 먼저 찍어도 된다고 하고, 그 다음에 ‘아미고’를 외치며 돈을 요구하니 주의하도록 하자. 마침 잔돈이 조금 있어서 그걸 드리고 왔다.

쿠스코의 골목골목마다 강아지들이 참 많다. 사람을 피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강아지들. 강아지조차도 쿠스코 풍경의 일부를 이루는 듯하다.

잠시 숙소에서 휴식을 취한 후 택시를 타고 삭사이와만으로 향한다. 숙소에서 삭사이와만까지는 10솔을 지불했는데, 이번에는 나름 괜찮은 가격에 택시를 이용한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옛 쿠스코의 성채로 잉카의 석조 문화를 한 눈에 느낄 수 있었다.

입장료가 70솔로 다소 사악하지만 트레킹 코스로 더 멀리 갈 수도 있어서 나쁜 가격은 아니다. 난 오후라서 지치고 피곤하기도 했고 내일 비니쿤카 투어를 새벽 같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체력을 아낄 겸 삭사이와만 쪽만 둘러보았다. 너른 잔디밭 한 켠에는 귀여운 알파카 친구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노닐고 있다.

페루인들이 보는 삭사이와만은 우리나라 사람이 보는 황룡사지 터 같은 기분일까? 유적 자체로도 충분히 멋있었지만, 유적 너머의 쿠스코 전경이 더욱 눈에 깊게 담긴다.

다행히 날씨 운이 오늘 너무 좋아서 맑은 하늘의 쿠스코를 볼 수 있었다.

산과 구름과 마을이 어우러진 절경을 바라보며, 이 땅에 번성했었을 옛 문명과 이 땅 위에 살아갔던 사람들의 서사를 빠르게 상상해 본다. 각자의 삶은 다양한 형태로 펼쳐지지만, 삶의 가장 원형적인 모습은 세계 어디에서나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삭사이와만 바로 옆 언덕에는 ‘크리스토 블랑코’라는 전망대가 있다. 여기에는 흰 예수상과 수많은 잡상인들이 있다. 쿠스코를 내려다보며 오늘의 여행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숙소에서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가본다. 마침 숙소에 새로 온 한국인 여행객이 보이길래 같이 식사를 하러 가자고 제안했고,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곱창요리 가게로 향했다. 여기서 또 한국인 여행객 세 명을 만났는데, 우리가 착석한 마지막 테이블이 흔들거리고 고정이 안 되길래 냉큼 같이 합석해서 식사해도 되겠냐고 제안했고 흔쾌히 받아주셨다. 다섯 명이 함께 하는 저녁 식사 자리가 되었는데, 이미 와 계셨던 세 분은 남미 여행을 한지 각자 세 달이 넘은 남미 여행의 고수들이었다. 엘 찰튼이니 칼라파테니 피츠로이니 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니까 토레스 델 파이네로 트레킹을 마무리하는 게 조금은 아쉬워졌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리우 데 자네이루 체류 시간을 줄여서라도 엘 찰튼은 한 번쯤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돼지곱창을 데리야끼 비슷한 소스에 졸여서 볶아낸 요리이다. 염통구이도 시키고 천엽도 함께 주문했다. 가격은 한 판에 28솔로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약 1만원 정도 된다. 정말 혜자스러운 가격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에는 소스 맛이 약간 과하게 느껴지긴 했는데, 먹다보니 또 의외로 짭짤하니 잘 먹혔다. 여기서 맥주를 마시지 말았어야 했는데…

식사를 마치고 두 명은 다른 도시로 이동한다고 해서 짐을 찾으러 갔고, 두 명은 쿠스코 야경을 즐길 수 있는 칵테일 바를 간다고 떠났고, 나는 내일 비니쿤카 투어 때문에 새벽 4시에 기상해야 해서 먼저 숙소로 돌아왔다. 이렇게 남미여행 4일차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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