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4. 14. 금
오늘은 비니쿤카 투어를 다녀왔다. 새벽 4시 20분에서 4시 40분 사이에 픽업을 온다고 하여 4시에 알람을 맞춰두고 9시 정도에 일찍 잠에 들었다. 그런데, 저녁 식사에 곁들인 맥주 때문이었을까, 아직 완전히 낫지 않은 몸살 기운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고산지대에 몸이 채 적응을 하지 못해서였을까, 정말이지 5분 내지 10분 간격으로 끊임없이 잠에서 깼다. 깰 때마다 꿈도 꾸었던 것 같다. 원래 한국에서는 한번 잠에 들면 절대로 깨지 않고 숙면을 취하는 타입인데, 10분에 한 번씩 깨어나니까 몸이 견디질 못하겠더라. 심지어 4시에 일어났을 때는 두통도 있는게 아무래도 고산병 증상인 듯 싶었다.
어찌저찌 준비를 마치고 투어 밴을 기다리느라 큰 길가로 나와서 대기하다가 재밌는(?) 광경도 봤다. 젊은 현지인 남녀인데 여자가 뒤따르고 남자가 앞서가고 있었고, 여자는 뒤에서 괴성에 가까운 울음소리를 내며 쫓아오고 있었다. 남자는 내 옆을 지나가면서 스페인어로 뭐라뭐라 했는데, 내가 당연히 그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다. 표정이나 몸짓을 보아서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듯 했다. 담배를 태우며 추위와 졸음과 싸우며 기다리다보니 예정시간을 조금 넘긴 때에 투어 밴이 도착했다. 밴을 타자마자 그대로 곯아떨어졌고, 눈을 뜨니 비니쿤카로 가는 도중에 제공되는 조식 식당이었다.

이미 이 마을에서부터 대자연에 압도 당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산과 다르게 침엽수림이 발달하지 않아서 그런지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조식으로는 팬케이크 한 장과 계란부침(계란부침은 놀랍게도 한국스러운 맛이었다), 그리고 수박과 파인애플이 제공되었다. 수박은 우리나라 것에 비해 당도가 덜했고, 파인애플은 더 시었다.

식사를 마치고 한 시간 정도를 더 밴으로 이동하면 비니쿤카 입구에 도착한다. 아, 투어비는 65솔이었고, 입장료 25솔은 별도이다. 이 입구에서 말을 타고 올라갈 수도 있고 걸어 올라갈 수도 있는데, 꼭 말을 타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 투어에서는 아무도 말을 안 타길래 나도 그냥 어영부영 따라가다가 진짜 고생고생 개고생을 해서 학을 뗐다. 말은 현지인이 한 마리씩 데리고 있는데, 딱히 적극적으로 호객 행위를 하지 않아서 먼저 다가가기가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 비니쿤카를 오른다면 반드시 말값을 치르고 말을 타고 오르기를 추천한다…

등산을 시작하면서 가이드가 찍어준 기념 사진. 이때까지만 해도 이후 내게 닥쳐올 시련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경치이다. 고산지대를 오르는 일은 정말 힘들었지만 중간중간 쉬면서 경치를 본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비니쿤카 정상은 해발고도로 약 5,400미터가 되는데, 스타팅 포인트 자체도 이미 높은 해발고도이지만 5천 미터가 넘어가는 고산지대는 또다른 차원의 육체적 고통을 선사한다. 나는 게다가 고산병 약도 따로 먹지 않고 무작정 산행을 시작한 것이라 더욱 심하게 고생을 했다.

귀여운 페루 소녀. 너는 어떻게 나보다 고산 지역에 잘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구나!! 나보다 혹시 헤모글로빈이 더 많은 것은 아닐까??

서서히 자태를 드러내는 무지개산. 화산 활동으로 생긴 지반의 미네랄 성분 때문에 다양한 색을 나타낸다고 한다. 다시 봐도 놀라운 광경이다.

여기가 바로 비니쿤카 정상!!! 오르는 데만 1시간 반이 걸렸는데, 정상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대기줄을 소화하느라 40분 이상이 걸렸다. 정상 부근은 바람이 상당히 차고 거세었는데, 투어 밴에 이너용 경량패딩을 두고 온 게 후회될 정도였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고산병 증세가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깨질 듯한 두통!!!!!!

같은 투어 동행이었던 타이 아주머니 세 명 사진을 찍어드렸더니, 내 사진을 찍어주셨다. 그런데 구도가 이게 뭡니까… 화면 중앙과 끝선이라는 사진의 기본 예절을 안 지켜서 괴랄한 컷이 나왔다. 그래도 뭐 계속 보다보니 정감이 간다.

하산하고 다시 투어 밴을 타고 중식을 먹으러 이동하는 동안은 정말 지옥과도 같은 두통의 연속이었다. 차라리 죽었으면 싶을 정도의 고통이랄까… 살면서 자주 안 아파서 건강의 소중함을 잘 몰랐는데, 남미가 이렇게 또 내게 가르침을 준다. 일행 중 한 여성은 아예 식사를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워 했다. 난 그래도 조금 저지대로 내려오니까 두통이 조금은 완화가 되었고, 투어를 마치고 쿠스코 시내에서 고산병 약인 ‘소로체필’과 아스피린을 사서 먹었더니 한결 괜찮아졌다.

숙소에서 낮잠을 자고 어제 맡긴 세탁물을 찾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원래는 사장님이 추천한 알파카 스테이크를 먹으러 갈까 했었는데, 비니쿤카 투어가 나름 등산이라고 다리가 꽤 아파서 멀리 이동하기가 귀찮았다. 그냥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햄버거 집에 들렀다.

의외로 정통 수제버거 같은 맛과 비쥬얼의 햄버거를 파는 곳이었다. 완전 대만족스러웠다. 감자가 한국적인 맛이 아니라서 당황스럽긴 했는데, 그래도 뭐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남미여행 5일차의 밤이 저물어 간다. 내일은 성스러운 계곡 투어를 떠나는 날이다. 내일은 오늘보다는 낫지만 6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내일은 쿠스코 숙소에서 체크아웃하는 날이니 짐도 미리 정리를 해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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