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엄마와의 파주 심학산 데이트

무소의뿔 2023. 1. 31. 21:20

아빠의 환갑 덕분에 회사로부터 이틀의 경조휴가를 받았다. 사실 아빠의 진짜 생신은 작년 가을이었지만, 예전에는 누구나 다 그러하듯이 주민등록이 늦어져서 실제 태어난 날과 주민등록상의 생일이 다르다. 실제 생신을 기준으로도 휴가를 신청할 수 있지만 그러려면 조금 번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그냥 주민등록상의 생일에 휴가를 신청했다. 아빠는 지금 학생들을 데리고 연수 차 미 서부 지역에 가 있다.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 휴가를 받았는데, 월요일은 오전에 이직 면접을 보고 점심에 헬스를 하고 저녁에 술을 마시고 오니 하루가 금방 갔다. 꽤 거나하게 마신 탓에 화요일 오전까지 헤롱거리고 있었는데, 점심 즈음 정신을 차리고 바람이라도 쐬고 올까 하다가 엄마가 같이 파주의 심학산을 가자고 꼬셨다. 파주 출판단지 근처에 있는 야트막한 산인데, 최고봉이 채 200m가 안 되는 산이다. 둘레길이 잘 되어 있어서 걷기에 좋은 산이다.

약천사 입구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산행을 시작한다. 왼쪽으로 난 길이 둘레길이고, 오른쪽으로 난 길은 정상으로 가로질러 오르는 길이다. 둘레길의 총 거리는 약 6.8km인데, 코스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더 짧게 걸을 수도 있다. 군데군데 눈이 채 녹지 않은 잔흔이 보이긴 하지만, 오늘 날씨는 영상으로 꽤 따듯한 편이다.

흙이 많은 산은 아니지만, 낙엽이 부서진 길이 꽤 보드랍다. 그 밑으로는 아직 길이 얼어 있다. 애초에 난이도가 높은 산이 아니라서, 걷는 데 큰 무리는 없다.

둘레길을 정비한 구간이다. 3년 전에 엄마가 아빠와 왔을 때는 이런 길이 없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엄마와 나란히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인생 고민들을 나눈다. 엄마는 항암 치료 중인 이모 걱정을 말했고, 나는 내 이직과 커리어 고민을 말했다. 말을 나눈다고 해결책이 뿅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꽤 위로가 된다. 말의 힘은 대단하다.

한시간 정도를 걸어오니 둘레길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정상을 안 다녀와도 무방하지만, 이왕 온 김에 조금만 노력을 더 들여 정상을 찍고 오자고 엄마를 꼬셨다. 

기상이 썩 좋은 날은 아니었지만, 역시 정상에 오르니 마음이 시원한 게 있다. 저 먼 산 너머로 임진강이 흐르고 한강과 임진강이 만난다. 강이 얼어붙은 것은 아닐텐데 포말 같은 것이 강 위로 많이 떠다니고 있었다.

남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파주와 저 멀리 김포까지 보인다. 참 많은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줌을 당겨서 한강을 담아본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전거를 타고 한강의 끝까지 달려보고 싶다.

내려오는 길에 잠시 약천사도 구경했다. 파주답게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약사여래대불상이라고 한다. 엄마는 합장하며 기도를 올렸다. 나는 기도를 통해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따로 기도를 올리진 않았다.

약천사 아래에 도토리막국수를 잘하는 집에 가려고 했는데 브레이크타임에 걸려서 바로 옆에 있는 곤드레나물밥집으로 왔다. 정갈한 한상으로 늦은 점심 요기를 했다.

엄마를 집에 내려다주고 나는 곧장 차를 몰아 사우나로 갔다. 사우나를 하러 가는 길에 어제 오전에 봤던 면접 결과를 문자로 통보 받았다. 불합격!! 의외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금 아쉽기도 했다. 떨어진 이유가 뭐였을까? 궁금하지만 뭐 이유가 있었겠지. 온탕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니 잠이 온다. 선베드에 누워서 몇십 분을 졸았다.

어쩌면 이번 불합격이 뭔가 내게 경종을 울려주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겸허하고 진지하고 절박한 자세로 이직에 임해야겠다. 내일은 출근이다. 오전에 2022년도 성과급에 관한 설명 session이 있다고 하는데, 큰 기대는 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내일부터 2월이라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온다. 이직을 위해 조금 더 힘을 내야할 그런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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