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ning/Seoul

맛은 갓벽했으나 서빙이 개판이었던 강남역 이자카야 - 센야

무소의뿔 2022. 10. 2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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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수원과 용인에서 서울로 나들이를 오시는 친구분들을 만날 때는 강남만한 선택지가 없다. 나는 경기도에 살아본 적이 없지만, 경기 남부에서 올 때는 강남 외에는 다른 곳은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곳은 강남뿐이다. 강남역 신분당선 4번 출구에서 역삼역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면 '센야'라는 작은 선술집 느낌의 이자카야가 있다. 우리는 여기서 모였다.

기본 찬으로 제공되는 게맛살 무침. 싸구려 맛살이 아니라 꽤 질 좋은, 게살 함량이 높은 맛살을 쓰는지 쫀득한 식감이 만족스럽다.

역시 기본 찬으로 제공되는 연두부튀김. 겉을 가볍게 튀긴 연두부 위에 가다랑어를 올려 내온다. 튀겨진 부분이 잘 안 으깨진다는 것만 제외하면, 속의 두부가 너무 부드러워서 참 고소하고 마음에 들었다.

우리가 센야에서 모이기로 한 이유는 바로 이 '모츠나베'에 있다. 다들 기름진 게 땡겼는지 입을 모아 모츠나베를 외쳤다. 대창전골은 내가 참 좋아하는 메뉴이기도 한데, 센야의 모츠나베는 약간 나가사키 짬뽕에 가까운 칼칼한 육수를 베이스로 해서 조금 더 담백한 맛이 강조된다. 육수의 농도가 진해서 한 모금 떠 넣을 때마다 입 안에 꽤나 묵직한 타격감을 선사한다. 대창이 많지는 않아서 다소 아쉽지만, 야채와 육수와 대창의 조합 자체만 놓고 보면 이자카야치고는 상당히 잘 만든 수작요리에 속한다고 평할 수 있다.

캐주얼한 이자카야여서 그런지 사케 가격대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3만원 대의 가성비 사케 라인업도 탄탄한 편. 물론 나같이 저렴한 간의 보유자는 술맛을 구분할 만큼 혀가 날카롭지 않아서, 가성비 사케로도 항상 즐겁다. 와인효모를 이용해 발효시킨 사케라고 하는데, 병에 32,000원이었다. 차갑게 칠링해서 마셔본다.

모츠나베 다음으로 우리가 주문한 안주는 모둠꼬치 10종 세트. 튀김이나 꼬치류는 주문에서 조리까지 20분 정도 소요가 된다는 점을 미리 기억해두자. 전반적으로 맛이 좋았는데, 기억에 남는 녀석은 리치를 베이컨으로 싸서 튀겨낸 리치베이컨꼬치(?)였다. 속재료로 과일, 겉재료로 고기라는 다소 괴랄한 조합인데도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전반적으로 고기를 두툼하게 썰어서 씹는 맛이 훌륭한 모둠꼬치였다.

다음으로는 고로케를 주문했다. 고로케는 8피스에 16,000원이었는데, 이게 진짜 물건이다. 정통 일본식 고로케의 맛을 잘 구현해냈다. 튀김 안의 감자 무스의 부드러움의 정도가 아주 훌륭했다. 개인적으로 고기를 좋아하고 탄수화물만 있는 음식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데, 탄수화물 위주의 음식인 고로케의 맛이 기억에 남았다는 것은 정말 꽤 많이 맛있었다는 방증이다.

데리야키 소스와 마요네즈 소스를 얹은 겉바속촉의 고로케는 참을 수 없다. 이쯤되면 술을 마시러 온 건지, 식사를 하러 온 건지 구분이 안 되는 지경이다.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섭취했으니, 마무리는 지방이다. 닭껍질 가라아케는 14,000원 일품요리인데, 역시 훌륭했다. 전반적으로 이 집은 튀김류에 강점이 있는 이자카야인 듯하다.

둘째를 임신했다는 친구를 축하하기 위해 케잌을 준비한 센스. 아니 케잌이 너무 귀여운 것 아닙니까ㅋㅋㅋㅋ 외부 음식은 먹을 수 없다고 해서 초만 불고, 맛은 안 보았다. 사실 초를 꽃을 곳이 없어서 초콜릿으로 된 꽃뚜껑을 잠깐 떼는 과정에서 케잌 일부가 손가락 끝에 살점 뜯기듯이 아주 조금 뜯겼는데, 그걸 맛보긴 했다. 치즈케잌 맛이었다.

둘째는 친구가 낳는데, 신은 내가 더 났다. 맛있는 음식, 좋은 친구, 이야기가 있는 밤은 언제나 즐겁다.

하지만, 맛으로는 흠 잡을 데가 없는 '센야'를 다시 방문할 의사는 없다. 그 이유는 서버의 과도한 interruption... 플레이트가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정말 끊임없이 가게를 돌아다니면서 (우리 테이블을 포함하여) 테이블의 빈 접시를 정리하고, 빈 병을 정리한다. 그 과정이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침습적인 느낌이고, 대화의 흐름을 방해한다. 과도한 의욕인지 아니면 사장의 주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편안하게 한 잔 하기에 상당히 불편했다.

술을 주문할 때도, 1인당 1잔을 꼭 주문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나는 태어나서 술집에 가서 한 잔만 마시고 나온 적이 한 번도 없다. 우리 일행에는 임산부도 있어서 먼저 사이다만 주문하려고 했고, 나머지 둘이서 하이볼을 한 잔씩 마시고 사케를 이후 주문할 요량이었는데, 무알콜 하이볼도 있다고 강권하는 자세가 정말 불쾌했다.

서버 때문에 불편한 느낌은 술자리가 파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끊임없이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마냥 가게를 헤집고 다니는 서버 때문에 영 기분이 찜찜했다. 다른 서버들로부터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을 더듬어보면, 서버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그냥 사장의 가게 경영 철학인 듯하다. 증맬루 별로였다. 아무리 맛이 좋아도, 기분을 불편하게 하는 식당은 두 번 다시 가지 않는다.

내년에도 장사를 하고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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