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체모 한 가닥

무소의뿔 2022. 7. 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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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대회 준비의 일환으로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점심시간마다 꾸준히 태닝샵에 방문해서 몸을 그을리는 중이다. 회사에서 천천히 걸어서 편도로 15분 거리긴 한데, 오며가며 유산소 운동 한다는 개념으로 하니 그리 귀찮지만은 않다. 벌써 태닝을 한지도 7회차에 접어들었으니, 이제 4주째 몸을 그을리고 있는 셈이다. 조금씩 구릿빛으로 잘 여물어가는 몸을 보니 뿌듯하기도 하다.

수직으로 세워 놓은 원통형 태닝 기계에 10분 정도 빛을 쐰다. 자외선인지 아니면 다른 특수한 빛인지는 모르겠다. 당연히 태닝 기계 안에는 다른 소지품을 지참할 수 없고, 알몸으로 들어가야 한다. 10분 동안 빛을 쬐는 것 외에는 다른 할 일이 없다. 빛을 쬐는 그 자체가 목적인 시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닝하는 시간 동안 심심한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두 번째 태닝을 할 때였나, 태닝 기계 안에서 누군가의 체모를 발견했다. 꼬부랑털이라는 고급진 용어가 따로 있지만, 여기서는 체모라고만 부르련다. 나의 것은 확실히 아니다. 영국의 전설적인 산악인이 '조지 리 맬러리'가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산을 오른다"고 말한 것처럼, 분명 그것은 나 이전에 이미 거기에 머물고 있었다.

네 번째 태닝을 할 때였나, 문제의 체모의 위치가 변하였다. 이해를 돕기 위해 태닝 기계의 형태를 묘사해보겠다. 수직으로 된 원통 안에 빛을 발하는 길다란 램프(2m에 육박한다)가 360도로 둘러쳐져 있다. 바닥은 전면 거울로 되어 있어 빛의 반사를 돕는다. 처음의 그 체모는 내 시야의 정면 무릎 정도의 램프 부근에 붙어 있었는데, 네 번째 때에는 가슴 정도의 램프 부근에 붙어 있는 것 아니겠는가?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일단 태닝샵 사장님은 체모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는 듯하다. 태닝 기계에는 선풍기가 내장되어 있는데, 선풍기 바람 때문에 위치가 변경되었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오늘 일곱 번째 태닝을 하고 왔다. 태닝 시간의 무료함을 견디지 못한 나는 위대한 모험을 감행했다. 한 번 그 체모를 만져보고 싶었다. 램프를 보호하고 있는 유리창으로 손을 갖다댄 순간, 그 체모는 유리 건너편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닿을 수 없는 존재였구나, 그래서 사장도 달리 손을 못 썼을 수도 있겠구나.

어렸을 때는 접촉이 사물 또는 관계에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진중권이 말하는 환유적 사고랄까, 20C 초반의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가 증여론에서 말한 개념이랄까, 대상과의 접촉이 세계의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강력한 요소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 같다. 아마, 나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여자애가 부는 리코더를 입에 대면 간접 키스한 것이라 놀림 받던 경험이 다들 있지 않은가. 남이 불던 리코더를 불었다고 남녀 간에 격정적인 키스를 했다고 볼 수는 없을진데, '간접'이라는 개념을 동원하며 환유적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런 식의 사고방식은 어른들에게도 여전히 통용되고, 태닝 기계 안에서도 물론이다. 타인의 체모를 만지는 건 (그것이 그 타인의 신체로부터 박리된 것일지라도) 뭔가 꺼림직하다. 불결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뭔가 타인의 내밀한, 보아서는 안 될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태닝 기계에서 뻗은 손은 단지 몇십 cm를 움직인 단순한 관절 운동이 아니라, 나의 세계에서 그(또는 그녀)의 세계로 넘어가는 거대한 발걸음이었다. (적어도 내 내심으로는 말이다.)

세계와 세계의 만남은 비록 성사되지 못하였지만, 이런 잡다한 생각들을 하면서 덥고 지루한 태닝 시간을 잘 버텨냈다. 물론 다음 태닝 때에는 내 시야에서 이 문제의 체모가 사라지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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