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주기적으로 카카오톡을 정리하는 버릇이 있다. 자주는 아니고, 1년에 두어 번 정도? 마구잡이로 하는 게 아니라 나름의 원칙이 있다. 최근 1년을 기준으로 단 한 번이라도 나와 연락한 적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한 번도 연락이 없는 사람들은 숨김친구로 상태를 바꾸어 놓는다.
숨김친구는 더 적은 빈도로 정리한다. 숨김친구는 아예 특정 탭으로 들어가야만 확인할 수 있는데, 그렇게 자주 확인하는 편은 아니다. 숨김친구에서 삭제로 넘어가면 이제 내가 그 자의 카카오톡 ID나 핸드폰 번호를 따로 알지 않는 한, 완전히 나의 boundary를 벗어나게 된다. 닿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숨김친구 정리는 더욱 신중을 기한다. 2년에 한 번 정도 정리하는 것 같다.
어제 헬스를 하면서 오랜만에 카카오톡을 정리했다. 이미 몇 번의 정리를 거친 후여서 그런지, 애초에 많지도 않았던 친구 목록이 더욱 쪼그라들었다. 80여명 남았을까, 그 중에 가족, 친척을 제외하면 순수하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40명도 채 안 될지도 모르겠다.
옛 직장 동료, 옛 대학 동기, 옛 로스쿨 동기, 오며가며 사회에서 알게 된 사람들, 선배들, 후배들 뭐 기타 등등. 지워진 자들의 목록이다. 사실 나의 카카오톡을 기준으로 보면 "내가 지운" 것이겠지만, 오랫동안 이미 왕래가 없는 상태라는 것은 나도 그 자도 아닌 그냥 관계의 상태가 "지워져 있는" 것일 뿐이겠다. 능동적인 행위의 개입을 굳이 전제할 필요가 없다. 그냥 그렇게 관계가 지워져버린 것이다.
20대 초반 처음 아이폰이 나오고 처음 카카오톡을 설치했을 때, 카카오톡의 친구 목록에는 고작 6명뿐이었다. 피쳐폰의 시대가 저물기 전이라 대부분의 의사소통은 문자로 이루어졌었고, 정말 선구자적인 몇 명만이 스마트폰을 쓰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 세 달, 반년, 일년이 지나면서 스마트폰 사용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그렇게 내 카카오톡 친구들도 많이 늘어났다.
20대 때에는 나의 인생이 확장된다는 혹은 확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세상은 참으로 넓었고, 나의 앎과 경험과 인간관계를 채워나가는 재미가 컸다. 그것이 인생의 유일한 성공의 척도인 것마냥.
30대가 되니 인생이 쪼그라든다. 20대의 나의 기준으로는 조금은 슬픈 일이겠지만, 지금은 그러한 상태 자체에 별다른 감흥이 없다. 많은 관계가 허망한 이유로 허물어졌다. 그리고 관계를 위해 에너지를 쏟는다는 게 이제는 피로하기도 하다. 오히려 소수의 단단한 core relationship이 내 삶의 행복과 윤택에 더 결정적이게 작용한다는 진리 아닌 진리를 깨우친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비워야 채워진다. 곁을 비워두지 않고서는 채울 수 없으니. 지금은 조용히 예비하는 단계이고, 묵묵히 내 삶을 채워나갈 새로운 자극, 새로운 관계, 새로운 목표를 겸허히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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