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인가 2014년인가. 철물점에 가서 방문고리를 하나 구매해서 내 방에 설치했다. 가정집에서 쓰는 일반적인 방문고리가 아니라 어디 사무실 철문 같은데 쓰이는 제대로 된 방문고리였다. 당시 10,000원을 주고 구매했던 기억이 난다.
방문고리를 갈아끼운 이유는 엄마가 자꾸 내 방에 들어오는 게 싫어서였다. 누군가 (설령 가족이라도) 나만의 private한 공간에 드나든다는 게 정말 싫었다. 조용히 부탁도 하고, 설득도 했지만, 엄마는 계속 들어왔었다. (물론 빈도는 줄었겠지만 말이다.) 잘 개놓은 빨래를 내가 가져가질 않으니 이것을 전달하기 위해 아주 잠시 들어오는 거였지만, 내가 집에 없는 동안 내 방에 엄마가 들어왔다는 게 정말 치가 떨리게 싫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왜 그렇게까지 싫었을까 싶지만.
방문고리를 바꾸고, 나는 학교에 나가면서 열쇠로 내 방을 잠그고 다녔다. 한창 사회과학을 배우면서 알게 된 지난한 논의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다고 한다. 의식을 제고하거나, 제도적으로 조율하는 2가지 방법. 하지만 캠페인을 통한 의식의 제고(제발 내 방에 들어오지 말아달라는 요청)는 실패로 귀결되었으니, 내게 남은 방법은 제도를 뜯어고치는 것(물리적으로 내 방 출입을 못하게 방문고리를 바꾸는 것) 뿐이었다.
그로부터 7년 또는 8년이 지났다. 내 방문 열쇠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나도 이제 방문을 잠그고 다니지도 않는다. 몇 년간의 자취 생활을 통해 내가 여유를 가질 수 있는 room도 조금은 넓어진 것일까. 요새는 내가 없을 때 엄마가 내 방에 잘 개어 놓은 옷을 두고 가도 아무렇지 않다. 오히려 고맙다. 한참 내 손으로 빨래를 하고 널고 개고 하는 그 작업은 참 지루하고 루틴하고 흥미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행동을 누군가 대신 해준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요새 문제는 바람이 쎄게 불면 내 방문이 잠긴다는 것이다. 전에도 몇 번 그런 적이 있었는데 며칠 사이로 방문이 2번이나 잠긴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랜 경험 끝에 방문을 열 수 있는 요령을 터득했다. 안 쓰는 플라스틱 파일로 문틈을 열심히 쑤시다 보면, "턱" 하고 걸리면서 문고리가 열린다. 땀을 뻘뻘 흘리며 파일로 한 5분인가 열심히 쑤시면서, 나도 모르게 크게 웃음이 터졌다. 왜 웃음이 터졌는지 모르겠다. 다 큰 아들이랑 엄마가 같이 방문고리를 두고 씨름하는 모습이 우습기도 했고, 이제는 아무 것도 아닐 일 때문에 멀쩡한 방문고리는 왜 바꿔서 이 사단을 냈는지가 웃기기도 하고.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를 냈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당면한 고민들은 시간이 지나면 정말 별 것 아닌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한 발 물러서서 여유를 가지는 자세로 삶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