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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 섬&산] [037] 통영 두미도 2025. 6. 2. 월

무소의뿔 2025. 6. 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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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통영 여행 때 미처 다 못 돈 섬들을 마저 돌기 위해, 대통령 선거일을 앞뒤로 하여 2박 3일 간의 통영 보완 여행을 기획하였다. 미리 사전투표를 마치고 편한 마음으로 여정을 나서본다. 이번 보완 여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이라 일요일 11시 마지막 고속버스를 타고 통영으로 내려갔다.

고속터미널에서 11시에 출발한 버스는 2시 반이 조금 넘어서 통영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새벽이라 그런지 정체 없이 쏜살과 같이 이동했다. 졸며 깨며 하며 버스에서 시간을 보냈다.

통영종합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면 야간할증이 붙더라도 만원 정도로 여객선터미널로 이동할 수 있다. 여객선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24시간 사우나에서 다만 몇 시간이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 들렀다.

몹시 피곤하지만 어쩔 수 없다. 버텨내야 한다. 2시간 쪽잠을 자고 일어나 탕에서 조금이나마 피로를 풀고 여정을 떠날 준비를 마친다.

여객선터미널까지 걸으며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 통영항을 바라본다. 저 멀리 미륵산이 보인다. 갈매기 울음소리마저 드문 아침의 항구는 아직 하루를 본격적으로 열기 전이라 고요하다.

1달 만에 다시 찾은 통영여객선터미널이다. 이제는 익숙하기까지 하다. 반가운 마음마저 든다.

두미도는 하루에 배가 2번밖에 안 간다. 즉, 두미도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하루를 꼬박 써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 1항차로 두미도에 들어가고 2항차로 나와야 한다.

바다누리 호를 타고 1시간 반 정도를 가야 두미도가 나온다. 욕지도와 멀지 않은 섬인데 연화도가 욕지도 생활권으로 묶이는 것과 달리, 두미도는 상노대도, 하노대도와 별도 노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천포와도 거리가 멀지 않아 삼천포 장날에는 통영항에서 출항하는 배가 없고 삼천포에서 배가 오가니 일정에 유의해야 한다.

이번에 2025 바다로 패키지를 새로 구매했다. 연간 12회 운임 할인이 되는 효자 패키지이다. 작년에도 2024 바다로 패키지를 구매했었는데 8월에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제대로 활용을 못하였는데, 다행히 만 35세 이하는 구매가 가능해서 올해 아주 뽕을 뽑을 작정으로 구매했다. 비용은 7,900원인데 주중에는 50%, 주말에는 20% 운임 할인이 들어간다. 단, 적용이 되는 운항노선이 제한적이니 미리 잘 알아보고 구매하도록 하자.

드디어 두미도에 도착했다. 오후에 비 예보가 있어서 그런지 아침부터 하늘이 너무 흐리다.

두미도는 아직 개발이 더뎌서 제대로 된 식당이나 카페가 없다. 낚시꾼들이 머무는 민박집은 몇 채 있고, 민박집에 미리 예약을 해두면 가정식 백반을 내주기도 한다는데, 혼자 다니는 나로서는 이용하기 다소 애매하다. 마을 청년회에서 관광자원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듯 하니, 몇 년 후에 들리면 좀 더 개선된 여행 환경 하에서 트레킹을 즐길 수 있을 듯하다.

짐이 많아서 마을 편의점에 잠시 두고 오른다. 마을 편의점에는 라면, 과자, 햇반, 음료 등이 비치되어 있고, 무인카페용 커피머신도 있다. 커피를 한 잔 뽑아 마시며 스트레칭을 한다.

북구 선착장 뒤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등산로 초입을 만날 수 있다.

놀랍게도 두미도에 내린 사람이 나뿐이었다. 그말인즉슨, 오늘 천황산을 오르는 사람은 나 혼자라는 뜻이다. 즉, 천황산은 내가 오늘 전세를 낸 셈이다!!!!

오른편으로 작은 북구마을이 보이고, 안개가 자욱한 바다가 보인다. 비는 오후부터 온다고 했는데 오전에도 이미 몇 방울씩 내리곤 했다.

남구에서 천황산을 오르면 정상으로 바로 갈 수 있고, 북구에서 천황산을 오르면 투구봉을 경유해야 한다. 어차피 섬에 거의 7시간 이상 머무르니 투구봉을 경유하는 코스를 택했다.

천황산이 습해서 그런지 버섯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호기심에 등산스틱으로 찔러보았는데, 푸석푸석해서 잘 부서진다.

아마 이 봉우리가 투구봉이 맞을 것이다. 투구봉을 이미 지나친 후에야 투구봉을 지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봉우리를 넘는 동안 특별한 표식이 없어서 몰랐다. 봉우리의 모양이 투구를 닮았다 하여 투구봉이라 한다.

북구 루트는 다소 거친 편이다. 암릉 구간도 상당하고 로프 설치 구간도 있어서 마냥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코스는 아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암릉 구간은 등산보다 하산이 더 어렵다. 비까지 와서 땅이 미끄러워 더욱 조심하며 걸었다.

저 멀리 북구마을이 흐릿하게 보인다. 날이 좋았다면 먼 바다까지 보여서 시원했을텐데 다소 아쉽다.

저기 보이는 바로 저 봉우리가 천황산 천황봉이다. 준엄한 기세가 드높다. 지금 봉우리에서 100m는 족히 더 올라야 할 듯 싶다.

파란색 라카로 칠해진 화살표만이 길을 가르켜 준다. 길이란 무엇일까 그 의미를 음미해보지 않을 수 없다. 주어진 길을 걸어갈 것인가, 새로운 길을 만들어갈 것인가, 내 인생의 길은 어디로 가는가!

사색을 일거에 단념케 하는 실존적 위기가 닥쳤다. 근래 오른 모든 섬과 산 중에 단연 으뜸으로 위험한 구간이다. 암벽과 진배 없는 경사, 다리의 힘이 아니라 상체의 힘으로 버텨내고 극복해야 하는 로프 구간이었다. 등산 초보자들은 남구 루트를 애용하도록 하자. 정말 무서웠다.

드디어 오른 천황산의 정상이다. 467m로 해발고도가 꽤나 높다.

기존 비석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박살이 나 있다. 몰락한 옛 왕조의 영화롭던 한 때를 떠올리게 한다.

돌을 받쳐놓고 혼자 낑낑거리며 찍은 기념사진치고는 꽤나 잘 나와서 마음에 든다.

안개가 정말 자욱하다. 잠시 안개가 걷히는 사이로 욕지도와 연화도가 보인다.

남구로 하산하는 길은 확실히 북구 루트보다 편했다. 천황봉 근처의 암릉 구간만 극복하면 그 이후에는 흙길이다. 중간에 잠시 남구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도 들려 보았다.

날이 맑은 때에 왔더라면 두미도를 더 알차게 즐길 수 있었을텐데, 얄궃은 날씨가 다소 아쉽지만 그래도 나름 알찬 트레킹이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꽃이 눈에 들어온다.

북구까지 거리가 다소 멀긴 하지만, 임도길을 걸으면 되서 크게 어렵지는 않다. 어차피 등짐을 북구마을 편의점에 다 두고 와서 돌아가야 한다. 둘레길처럼 '두미도 옛길'이 있어 그 길로 갈 수도 있는데, 길이 정비가 덜 되어 풀이 너무 무성하다. 길과 길이 아닌 것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서 안전하게 임도길로 걸었다.

고즈넉한 남구마을이 엿보인다. 그래도 안개가 조금 걷히는 듯하다.

마을 분이 고생했다며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셨다. 10km에 달하는 트레킹을 마치고 나서 마시는 아메리카노는 정말 달다.

식당이 따로 없어서 아쉬운대로 마을 편의점에서 즉석라면(놀랍게도 한강라면 제조기가 비치되어 있다)과 햇반으로 요기를 했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다. 그 어떤 정찬보다도 꿀맛이다.

통영으로 돌아가는 배를 기다리며 편의점 앞 벤치에서 독서도 하고, 노트북으로 업무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한가로운 오후였다.

숙소에 짐을 풀고 샤워를 마치고 선지해장국으로 저녁을 먹었다. 여독을 풀어주는 정갈한 맛이다. 내일은 한산도와 용호도를 모두 돌아야 하는 강행군이다. 이렇게 두미도 산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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