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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 100대 명산] [018] 문경 조령산 2025. 4. 30. 수

무소의뿔 2025. 5. 13. 21:22

5월 연휴를 맞이하여 지독한 산행 여행을 시작했다. 그 첫번째 관문은 경북 문경의 조령산이었다. 거제와 통영의 섬들을 도는 게 메인인 여행이었지만, 남해안까지 한꺼번에 내려가면 피곤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여 중간 지점인 조령산을 등정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화령 휴게소에서 오르면 최단코스로 조령산을 오를 수 있다. 3년 전, 자전거 국토종주를 할 때 새재자전거길을 종주하느라, 이화령 휴게소를 한번 들린 적이 있었다. 그때의 고통스러웠던 업힐의 추억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추억의 빨간 스탬프 부스다. 오랜만에 다시 만나니까 반가움마저 든다.

이화령 휴게소에서 장비들을 세팅하며 등산 준비를 한다. 연휴 초입이라 서울을 빠져나오는 차들이 많아서 정체 때문에 꽤나 지연이 되어서, 다소 늦은 6시에 등산을 시작해야 한다.

새재자전거길은 기억으로는 100km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그때는 진짜 고속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전국을 누볐는데, 벌써 까마득한 예전 같게만 느껴진다.

휴게소의 왼편 공터 사이로 조령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저 데크길을 따라 쭉 오르면 첫 번째 헬기장이 나온다. 나는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15분과 엄청난 체력을 허비했다. 정신을 단디 차려야 한다.

일몰이 머지 않았다. 발걸음을 재촉해 등산을 시작해 본다. 산세는 참 훌륭하다.

첫 번째 이정표까지, 앞서도 말했지만 편히 오르는 길이 있다. 여기서 시간과 체력을 너무 허비한 게 이번 등정의 가장 아쉬운 포인트였다.

속살처럼 뽀얗고 여린 잎들이 봄을 한껏 맞이하고 있다. 등산객이 많지는 않은 편인지, 길이 좁고 수풀이 정리가 안 되어 있다.

해질녘 산행은 처음인데, 한낮의 산행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다. 요새 한창 젤다의 전설을 플레이하는 중인데, 마치 그 필드를 누비는 기분이다.

조각구름이 떠 있는 하늘이 고즈넉하다. 마음은 급하지만, 눈은 풍경을 담느라 더 분주하다.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 이화령에서 조령산까지 1.1km인 줄 알았는데, 1.7km가 더 있었다. 즉, 편도로 2.8km를 가야 조령산 정상에 도착한다는 것. 6시에 등산을 시작해서 8시까지 하산하는 것을 목표로 출발했는데,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안전을 위해 조령산을 포기할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사나이답게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이제는 하늘이 정말로 일몰 단계로 진입했다. 산에는 아무도 없다. 나 혼자다. 발걸음을 더욱 재촉해 본다.

이 와중에 노을진 하늘은 속절없이 아름답다. 저런 하늘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면 무슨 기분일까 잠시 궁금해진다.

능선을 타기까지 고개를 오르내려야 하지만, 한번 능선을 타면 그 이후의 구간은 그럭저럭 걸을만하다.

가뭄에 단비 같은 조령샘. 아직 봄비가 내리기 전이라 수량이 부족하긴 하지만, 외로운 등산객의 목을 축이기에는 충분했다. 등산 스틱만 잡고 오른 산행이라, 물이 간절했다.

마지막 데크길을 오르면 드디어 조령산 정상이다. 힘을 내본다.

고생 끝에 드디어 새도 쉬어간다는 조령산 정상에 도착했다. 해발고도가 1,062m로 꽤나 높은 편이다. 주변이 온통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높이를 실감을 못했을 뿐이다.

이미 해는 다 저물었다. 이왕 늦은 거 기념 사진이라도 냥냥하게 남기고 내려간다.

이제는 완연한 초저녁이다. 슬슬 스마트폰의 후레쉬를 켤 준비를 한다. 다음에 야간 산행을 할 일이 있을지 모르니 헤드랜턴을 꼭 미리 구비해 두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야속하게도 달마저 초승달이다. 능선을 벗어나니 정말 한치 앞도 안보이는 칠흑 같은 어둠이 펼쳐졌다. 한발 한발 조심히 내딛으며 하산하느라 평소보다 시간이 배로 걸렸다.

그래도 잠깐의 낭만을 잊지 않는다. 아까의 어느 헬기장에서 바라본 하늘은 온통 별천지였다. 그야말로 별이 쏟아지는 봄밤이었다.

하산을 마치니 9시였다. 약 3시간 만에 왕복 5.6km 산행을 마친 셈이다. 이화령 휴게소가 문을 닫아서, 고속도로를 조금 달려서 나온 첫 번째 휴게소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며 18번째 산행을 마무리했다. 이번 산행은 (1) 등산 전 코스의 철저한 점검의 중요성, (2) 야간 산행의 위험과 장비의 필요성을 일깨워주었다. 앞으로는 안전에 더욱 만전을 기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