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과학서적을 읽었다. 수학 관련 서적도 잠깐 읽어봤지만, 물리학 쪽이 아무래도 페이지가 잘 넘어가길래 시작한 김에 끝을 보았다. 물리학 책이지만, 철학서적에 가까운 구성이었다. 저자의 말처럼 책 전체를 통틀어 수식은 딱 하나만 등장한다. 하지만, 그래서 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책은 양자중력 개념을 토대로 시간의 본질에 관하여 논한다. 시간에 관한 다양한 사유와 사색을 담고 있지만, 시간에 관한 완결되고 통합된 어떤 단언은 없었다. 인간의 인식과 우주적 시간, 그리고 양자 차원에서의 시간에 관한 파편적인 고찰들은 훌륭했지만, 그래서 "결국 시간은 무엇인가"라는 궁극의 질문에 대해 속시원한 답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아니면, 내가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은 열역학의 기본 명제로부터 시간의 본질을 나름 도출했다. 그러니까,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에서 낮은 상태로 흐르는 사건과 사건 간의 선후관계 속에서 시간의 흐름 비스무리한 게 일어난다는 것인데, 이런 개념적 발견과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여전히 괴리가 크다.
저자는 책의 후반부에서 이런 인식의 간극을 보충 설명하기 위해 인간 인식으로서의 시간 개념에 대해서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도 마음이 조금 찜찜한 것은, 그러한 물리학적 고찰이 결국 우리가 현재 이 '시공간'을 살아가는데 어떠한 실천적인 지침을 줄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 답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의 어느 부분에선 다중 우주나 시뮬레이션 우주의 이론적 베이스가 될 만한 내용도 다루고 있다. 파편적 앎이 통합되는 기분이 들어서 조금은 만족스러웠다. 앎을 넓혀가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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