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Doings

예술의 전당 그리고 엄마

무소의뿔 2022. 11. 5. 23:47

지난 5년간 엄마가 꾸준히 서예를 취미로 해 왔다. 가족들에게 엄마가 써내려간 글씨를 자랑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열심히 연마하더니 이번에 아시안캘리그라피 축제에 당당히 입선하였다.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다. 예술이랑은 별로 큰 관련이 없는 집안에서 예술의 전당에 갈 일이 생겼다. 그야말로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엄마를 위해 꽃다발도 하나 샀다. 예술의 전당 비타민스테이션 건물에 프라그랑스라는 꽃집이 있다. 4만원 짜리 수국 꽃다발이 미리 만들어진 것이 있어서 급하게 하나 바로 사서 서예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한 컷 찍어봤다. 꽃값이 진짜 금값이다.

서예뿐만 아니라 문인화와 디자인 서체 등등 이것저것 종합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전시 마지막 날이라 더 미룰 수가 없었다. 예술의 전당은 7년 전인가 음악 교양 수업 과제로 휘가로의 결혼을 보러 온 이후로 처음이다. 예술은 내게 참 어렵다. 생소하고 낯설고 두렵다. 언젠간 나도 예술적으로 풍성해질 수 있을까?

수상작들을 한 데 모아놓은 작품이 꽤나 볼만 했다. 이렇게 놓고 보니 정말 엄청난 예술 작품 같다. 뭐, 애초에 내가 엄청나고 엄청나지 않은 것을 구분할 안목도 없지만, 거대한 크기가 주는 압도적인 느낌은 확실히 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나름의 예술혼이 한 벽면에 집대성되어 있다는 것이 뭔가 장엄한 느낌을 자아낸다. 인간은 참 대단하다. 사소하고 하찮으면서도 위대하다.

우리 엄마의 작품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엄마가 늘샘이라는 호를 썼는데, 어느샌가 소연으로 호가 바뀌었다. 연꽃처럼 맑게 간다 뭐 그런 뜻이라고 한다. 엄마는 전서를 썼다. 전서는 고대 중국의 서체라고 한다. 지금의 한자와는 딱 보기에도 조금 다르다. 고대 상형문자의 느낌을 많이 갖고 있다.

엄마는 올해 초에 은퇴한 이후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 단 하나, 건강과 체력이 젊을 때만 못해서 본인이 원하는 만큼 충분히 삶을 즐기지 못하고 있다. 그 점이 나도 참 안타깝다. 엄마는 젊음을 갈아 나와 동생을 길러내셨다. 그것이 엄마의 삶의 무게였겠지. 길러낸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나는 엄마의 청춘을 자양분처럼 먹고 자라났다.

관절이 안 좋아 엄마는 약을 달고 산다. 약 때문인지 얼굴이 몇 년간 많이 부었다. 그런 엄마의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참 안쓰럽다. 내 눈에는 여전히 예쁘고 멋있는 여자다. 더 좋은 것, 더 맛있는 것을 많이 해 드리고 싶다. 고단했던 삶의 기억을 뒤로 하고, 생을 축제처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엄청난 효자는 못 되지만, 이렇게 다 늙어서도 내가 엄마의 기쁨이면 좋겠다. 엄마가 더 많이 웃고 더 건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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