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오랜만의 여유로운 하루

무소의뿔 2022. 10. 4.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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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대회를 치르고 난 다음날. 개천절이라 월요일임에도 하루 더 쉴 수 있는 날이다. 원래는 오전에 운동을 마치고 유산소 조로 하루종일 배달 알바를 할 요량이었는데, 얄궃게도 비가 하루종일 추적추적 내린다. 이전이라면 우비라도 챙겨 입고 나갔을텐데, 혹시 모를 부상도 염려되고, 대회를 마친 다음날이라 그런지 기력이 없기도 하고, 극단적인 탄수화물 제한으로 힘이 없어서 오늘 하루는 휴식을 주기로 했다.

오후에는 운동을 했다. 웨이트는 가볍게만 하고, 트레드밀을 걸으며 종이의 집을 봤다. 중간중간 1층으로 올라와 담배를 피웠다. 이때는 비가 오지 않아 좋았다. 나는 신발이 젖는게 너무 싫다. 갈아신을 신발을 챙겨서 슬리퍼를 끌고 헬스장으로 갔었는데, 담배 피러 올라올 때마다 신발을 다시 갈아신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저녁에는 서점에 들려서 요새 어떤 책들이 나와 있는지 둘러봤다. 사람들이 불행한가보다. 하버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행복학, 인생에 대한 책들이 매대에 꽂혀 있었다. 하버드라는 키워드로 유사한 세 책이 동시에 출간된 것을 보니, 요새 사람들은 확실히 행복하지 않은가보다. 행복, 나는 행복한가? 적어도 대회 준비를 하는 동안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매슬로우가 말한 생리적 욕구조차 충족되지 않는 그런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데, 그보다 상위의 유포리아가 가당키나 할까.

일본 여행 서적도 살펴봤다. 10월 11일부터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 일본의 왠만한 도시는 다 다녀왔고, 주요 도시 중에서는 후쿠오카와 오사카를 아직 안 다녀왔다. 나는 후쿠오카에 가고 싶은데, J는 오사카에 가고 싶다고 했다. 다음에 서점을 가면 오사카 여행 서적을 살펴보아야겠다.

마지막으로는 사우나에 들렀다. 9시 이후에 들어가면 야간 할증으로 1,000원을 더 내야 한다. 9시 이전에 들어가면 9,000원에 사우나를 이용할 수 있다. 여기에 1,000원을 들여 이태리 타올을 하나 사면 딱 10,000원이 된다. 나는 숫자가 깔끔하게 떨어지는 게 좋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혈관의 이완과 팽창을 눈으로 살펴본다. 어제 대회 이후 씻는다고 씻었는데, 탄 발라둔 게 완전히 안 지워졌나보다. 평소보다 진한 색의 때가 가락처럼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온다.

세신을 마치고 몽롱하며 개운한 상태로 흡연실에 들어가 담배를 한 대 피운다. 예전에 친구와 사우나를 가면, 사우나가 끝나고 친구와 담배를 피는데, 친구가 그 개운함에 대해 말했던 것이 떠오른다. 나는 사우나 후에 담배를 피우면 몸이 다시 더러워지는 기분이 든다고 반론을 펼쳤는데, 지금 보니 개운함이 더 큰 것 같다.

집에 돌아와 마사지 기계로 마사지를 받으며 엄마와 아빠가 거실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모습을 지켜본다. 내가 보기에는 별로 크게 재미있지도 않은, 여자 연예인들의 축구 예능이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연신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호르몬의 변화일까, 세월의 흐름일까, TV의 사소한 장면 하나하나에 웃는 부모님의 모습이 사뭇 서글펐다.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유튜브 쇼츠 영상을 몇 편 보다가 잠이 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별 일 없는 평온한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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