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심히 모은 마일리지를 털어 대한항공 퍼스트클래스를 탑승했다. 마일리지 제도 개악을 두고 작년에 사회적으로 시끄러웠는데, 아시아나와 합병절차가 완료되어 진짜 개악되기 전에 마일리지를 털기 위해 열심히 보너스 항공권을 찾았다. 360일 전 오전 9시에 출발 당일 비행기 편이 열려서 아침 9시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수강신청하는 마음으로 대한항공 홈페이지를 뒤졌었다. 하지만 결국 타게 된 퍼스트클래스 항공편은 취소편이었다. 애초에 마일리지 퍼스트 좌석 자체가 잘 열리지 않는 모양이다.

총 33만 마일을 모았는데(돈을 얼마나 쓴 거냐;;), 비수기 기준으로 가장 장거리 편도 퍼스트클래스가 8만 마일이 든다. 나는 운 좋게도 왕복 모두 퍼스트클래스 자리를 잡아 총 16만 마일을 썼다.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로 비행시간은 약 13시간 내외이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의 가장 우측 끝 A 코너로 가면 비즈니스/퍼스트 클래스 체크인 부스가 있는데, 그 안에서도 퍼스트클래스 체크인은 대기열 없이 편히 체크인할 수 있는 별도의 체크인 라운지가 구비되어 있다.

여권만 제시하면 위탁수하물은 직원 분이 알아서 챙겨가 주신다. 그 사이 간단한 한과와 음료를 내어준다. 나는 졸음도 쫓을 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부탁했다.

퍼스트클래스 라운지를 별도로 운영하는데, 공교롭게도 8월부터 보수 공사로 라운지 이용이 불가능하단다. 대신 한 등급 아래 라운지인 마일러 클럽 라운지를 쓸 수 있고, 양해 선물을 주신다. 샴페인 잔과 소금/후추 용기 세트 중에 하나를 고를 수 있는데, 나는 소금/후추 용기 세트를 택했다. 퍼스트클래스 기내식에 서빙되는 바로 그 용기다.

2019년도부터 마일리지가 적립되는 신용카드를 열심히 써왔는데, 드디어 빛을 발하는구나! 마일리지로 보너스 항공권을 구매하는 경우에도 유류할증료와 공항 이용료 등 일부 요금이 부과되는데, 인천공항은 생각보다 싸고 히드로 공항은 생각보다 비쌌다. 합쳐서 약 90만원 정도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였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라운지로 향한다. 일등석이더라도 출국 수속 절차는 동일하게 받아야 한다. 법의 지엄함이란! 법은 역시 만인에게 평등하다. 매 여행마다 시간에 쫓겨서 라운지를 즐겨본 적이 제대로 없었어서(물론 마일러 클럽 라운지는 들어갈 권한조차 없음), 기대가 된다.

라운지는 넓고 쾌적했고, 인테리어도 훌륭했다. 신용카드 열심히 쓰면 갈 수 있는 라운지와는 역시 차원이 다르구나! 뷔페는 하얏트 호텔 셰프가 운영한다고 하는데, 메뉴가 호텔 뷔페만큼 엄청 다양하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메뉴들 위주로 간단히 담아왔다. 뷔페 코너와 별도로 바가 있는데 바텐더가 상주하고 있다. 발베니, 글렌피딕 등 위스키가 무제한이다! 아침부터 발베니로 심신을 일깨워본다.

식사 2트를 달린다. 대단한 맛은 아니지만, 소량으로 모든 메뉴를 먹어보는게 뷔페를 즐기는 내 방식이다. 위스키 온더락도 한 잔 더 주문했다.

후식으로 젤라또를 먹는다. 원래 일등석 라운지는 하겐다즈가 무제한이었다고 하는데... 하겐다즈는 없고 다소 허접(?)해 보이는 젤라또가 준비되어 있다.

마일러 클럽 라운지의 샤워 룸을 이용하기 위해 씻지 않고 인천공항으로 왔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샤워 룸은 직원 분께서 입장 통제를 하시는데, 비행 편이 몰리는 시간에는 대기가 발생할 수도 있겠다. 나는 오전 비행기인데다가 비수기 시즌이어서 대기 없이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호텔 화장실보다 넓고 쾌적한 샤워 룸이다.

나는 혼자인데, 수건은 2인분이 구비되어 있구나!

로션과 스킨, 바디로션, 핸드크림 모두 이솝 제품이다. 바디로션은 한겨울이 아니면 잘 안 바르지만, 이솝 제품이니만큼 온몸 구석구석 치덕치덕 발라준다.

샤워 용품도 모두 이솝 제품이다. 이것이 부의 향연이로구나!

샤워 부스는 8개가 마련되어 있고, 부스당 이용시간이 20분인가 그랬다. 참고하도록 하자.

라운지를 충분히 즐긴 후 비행기로 이동한다. 길게 늘어선 대기 줄 옆으로 패스트 트랙으로 체크인을 한다. 들어가는 입구부터가 다르다. 6년 전 뉴욕 가는 대한항공 편 비행기에서 무료로 비즈니스 석으로 업그레이드 받은 것과, 올해 초 대만 여행에서 돌아오는 대한항공 편 비행기를 마일리지로 비즈니스 석으로 끊었던 것을 제외하면, 늘 이코노미 인생이었는데, 오늘은 나도 퍼스트클래스다! 퍼스트클래스는 무려 옷장이 따로 있다!

웰컴 드링크로 이것저것 선택 가능한데, 나는 그냥 제로 콜라를 주문했다. 이륙 전까지 주류 주문은 안 된다. 간단한 주전부리를 함께 내어준다.

웰컴 어메니티도 준다. 예물 반지를 보러 백화점을 돌아다니다가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GRAFF라는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했다. 파우치로 나중에 따로 써도 좋을 듯하다.

비닐을 벗기면 이런 느낌이다.

파우치를 열면 간단한 아이템들이 있다. 물론 나는 하나도 쓰지 않고 그대로 여자친구에게 가져다 주었다.

검은 주머니 안에 든 제품들은 나름 디자인에 신경을 쓴 모양이다. 보석만 만드는 브랜드가 아니었구나 너?

런던 행 비행기는 보잉 777이라 코스모스위트 1.0이 탑재되어 있다. 뉴욕 가는 비행기에는 코스모스위트 2.0이 탑재되어 있다고 하는데, 얼마나 더 좋을까? 180도로 펼쳐지는 모션 베드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슬라이딩 도어가 구비되어 있다. 앞열은 창문이 3개이고, 뒷열은 창문이 4개이다.

내 키가 183인데, 다리를 다 펴도 공간이 남는다. 정말 쾌적하다. 이코노미와는 궤를 달리하는 안락함!

발 아래에는 기내수화물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가방과 신발을 벗어두었다. 기내 슬리퍼로는 기내 잠옷과 동일하게 프레떼 제품을 제공한다.

이어폰 대신 헤드폰이 제공된다. 바워스 앤 윌킨스 제품인데, 애초에 해당 브랜드를 처음 보았다. 에어팟만 쓰니까 음향기기 쪽은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 쿠팡으로 찾아보니 가격이 정말 상당하구나!

기내 소음을 고려한다면 훌륭한 음질이었다. 다만, 노이즈 캔슬링 기능은 따로 없다. 그래도 사운드가 풍성하게 잘 나와서 그닥 불편함은 없었다. 덕분에 기내 영화에 완벽히 몰입할 수 있었다.

이모저모를 둘러보며 즐기는 동안, 이륙한지 얼마 안 되어 첫 번째 기내식 타임이다. 인천에서 출발하는 항공 편에서는 기내식 사전 주문이 가능해서 기내식 두 끼를 모두 특별 주문해 보았다.

뭐 그렇다 한다!

사전 주문을 따로 하지 않으면 메뉴 중에 골라야 한다. 나는 첫 번째 식사는 송아지 필레미뇽과 참치 스테이크를 골랐고, 두 번째 식사는 연어류를 골랐다.

영문 페이지도 있다.

샴페인은 앙리 지로가 나오는데, 정말 맛이 좋았다. 식전주로도 마실 수 있고, 비행 중에 따로 주문할 수도 있다.

화이트 와인은 2종, 레드 와인은 3종이 구비되어 있다. 모두 좋은 와인이겠지만, 사실 와인은 잘 모른다!

첫 번째 기내식 페어링 와인은 아르헨티나 말벡으로 골랐다. 재작년 남미 여행의 추억을 되새길 겸.

디저트 와인도 있다. 런던 갈 때는 샌드맨을, 인천으로 돌아올 때는 샤또 기로를 마셨다.

위스키 온더락, 하이볼, 칵테일 그밖에 논알콜 음료도 주문이 가능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식사를 즐겨보자. 전채 요리로 한입거리 음식들이 나온다. 역시 뭐니뭐니 해도 이 전채요리의 꽃은 캐비어다. 캐비어를 전용 스푼으로 퍼먹는 날이 오다니, 감개가 무량하도다.

세비체는 페루에서 한 번 먹고 너무 시어서 안 좋은 기억이 있었는데, 과일로 맛을 잡아주어서 꽤 괜찮았다.

캐비어는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맛이었다. 약간 찐득하면서 비린 맛이랄까? 묘한 감칠맛 하나는 기가 막혔다. 금속 숟가락으로 뜨면 캐비어의 맛이 변질되기 때문에 플라스틱 전용 숟가락으로 먹어야 한다고 한다. 참으로 호사스러운 음식이 아닐 수 없다.

에피타이저를 먹고 나면 다음 요리를 세팅해 주면서 식전빵도 함께 제공한다. 모닝 롤을 제외한 나머지 빵들은 다소 딱딱하긴 했다. 가운데의 소금/후추통이 이번에 체크인 라운지에서 받은 선물이다.

랍스터와 아스파라거스 요리가 나왔다. 랍스터 살이 통통하니 식감이 매우 훌륭했다. 소스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맛이었다.

양식 코스에 뜬금없이 버섯만두국이 나오긴 했는데, 정말 대만족한 메뉴였다. 버섯으로 국물을 우리면 맛이 참 오묘해진다. 올해 초에 부모님을 모시고 갔던 롯데호텔 도림에서 맛본 탕요리가 문득 머릿속을 스쳐가는 맛이었다. 훌륭했다.

요리가 또 나온다! 야채 수프인데 맑은 국물이라 메인 메뉴 전 입가심으로 나쁘지 않았다.

드디어 등장한 송아지 필레미뇽과 참치 스테이크. 와인 베이스의 스테이크 소스는 따듯하게 데워 전용 용기로 별도로 가져다 준다.

미디움 레어로 주문했는데, 안성재 셰프의 말을 빌리자면 고기가 이븐하게 익지는 않았다. 전반적으로 소금 간이 강하게 되서 다소 짜기도 했다. 만약 땅 위의 레스토랑이었다면 컴플레인을 걸어볼 만했지만, 여기는 하늘이니 참고 먹는다. 고기 질이 좋아서 먹기에 거슬리지는 않았다.

참치 스테이크는 필레미뇽보다 더 바싹 익혔다. 단백질 파티로구나!

말벡 와인과 함께 하늘 위에서 즐기는 정찬이라니,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도다.

디저트로 모듬 치즈와 견과류, 포도, 비스킷 그리고 무화과 잼을 준다. 브리 치즈는 치즈의 재발견이라 할 만한 맛이었다. 내가 지금껏 먹은 브리 치즈보다 더 깊게 발효되어 꾸덕한 식감이 배가되어 있었다. 그리고 두 말하면 입 아픈 나의 사랑 블루 치즈. 지금 생각해보니 한 덩이 더 달라고 할 걸 그랬다.

샌드맨 포트와인과 함께 디저트까지 즐기고 나니 배가 터질 지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라운지에서 이미 배를 채운 뒤에 비행기를 타서 곧바로 밥을 먹었다. 아, 일등석에서는 식사 시간을 승객 편의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 이륙 중이거나 착륙 중이 아니라면 편한 시간에 원하는 때에 골라서 식사를 하면 된다. 나는 그냥 승무원이 줄 때 먹었다.

진짜 마지막 디저트다. 애플파이와 아이스크림을 내오는데, 너무 배가 불러서 파이는 사양했다. 레오니다스 초콜릿도 함께 준다.

마무리는 따듯한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다. 티로 입을 정결히 한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화장실로 가서 잠옷으로 환복을 한다. 다른 유튜브 영상에서 대한항공 일등석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바로 화장실이라고 했었는데, 공간이 조금 더 넓다는 것과 핸드 타월이 비치되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진짜 이코노미 화장실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1860년부터 린넨을 메인으로 해서 다양한 패브릭 제품들을 만들어 온 이탈리아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프레떼와 콜라보하여 만든 잠옷이다. 잠옷은 비행이 끝난 후 가져갈 수 있다.

프레떼 잠옷은 면이 부드러워 촉감이 정말 좋았다. 신체 스펙이 183kg에 83kg이라 XL 사이즈를 요청했는데, 생각보다 짧게 나왔다. 돌아오는 편에서는 2XL로 입었는데 훨씬 기장과 품이 잘 맞았다.

환복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면 침대가 완성되어 있다. 베딩 서비스라고 해서 승무원 분이 직접 이부자리를 펴주신다. 엄마 이후 내 잠자리를 봐주는 사람은 처음이다!

누워 영화를 보며 또 심심하면 위스키도 한 잔 마시며 그러다 졸리면 잠들었다가 깨면 창밖도 한 번 보고 그렇게 하늘에서의 시간을 보낸다.

도착 5시간 전 침대를 치워달라고 했다. 런던 여행 계획을 미리 못 세워서 열심히 가이드북을 보며 공부를 했다. 블러드 메리 칵테일을 한 잔 주문했는데, 토마토 베이스인 줄 알았으면 안 마셨을 거다!

대한항공의 별미, 기내 간식 라면도 주문했다. 진라면과 신라면 중에서 고를 수 있는데, 나는 맵찔이라 진라면을 골랐다. 한우를 무려 6 피스나 올려준다. 하지만 히드로 공항에서 출발하는 편에서는 한우를 올려주지 않는다ㅠ 참고하도록 하자.

라면을 다 먹고나니 어느덧 비행기는 흑해 동쪽 상공을 날고 있다. 이 바다를 건너면 드디어 유럽 대륙이다.

진짜 잠을 깨야 하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한다.

두 번째 식사 시간이다. 아무래도 두 번째 식사는 첫 번째 식사보다 다소 간소하다. 상당히 신선한 샐러드가 전채 요리로 나온다.

연어스테이크와 뭐시기인데 오른쪽 음식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해산물이니만큼 화이트 와인과 페어링해 즐겨본다.

후식으로는 과일이 제공된다. 망고가 특히 맛있었다.

어느덧 안개가 자욱한 런던 시내를 날고 있다. 정말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구나. 하늘에서의 13시간 반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만큼 안락하고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누워서 비행한다는 건 정말 큰 즐거움이다. 이제 잠시 퍼스트클래스의 추억은 내려놓고 런던을 즐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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