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재판 때문에 회사가 아닌 서초동으로 출근하는 중이다. 여의도와 노량진 사이를 지나고 있는데, 벚꽃이 흐드러지게 만개한 것이 바야흐로 봄의 절정이다. 어제부터 날씨도 몰라볼 정도로 따듯해졌다. 오늘은 차림을 가볍게 하고 이동하는 길이다. 마음도 몸도 봄을 지나는 중이다.
분홍 빛이 감도는 벚꽃보다 흰 벚꽃이 내 눈에는 더 아름답다. 이번 주가 벚꽃의 절정일텐데 다소 아쉽게도 벚꽃을 같이 보러 갈 사람을 구하지는 못 했다. 벚꽃은 시기를 놓치면 1년 뒤를 또 기약해야 한다. 그리고 1년은 상당히 긴 시간이다. 1년 뒤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또 완전히 다른 사람일 것이다. 연속성 뒤에 숨겨진 불연속성, 그걸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이 지금 회사 소속으로 가는 마지막 재판이 될 것이다. 이직은 확정되었고, 현 직장에 통보도 완료했다. 다음 주 금요일까지만 출근하고 남은 연차를 모두 소진하기로 했다. 바로 다다음 주 월요일에 비행기를 타고 멀리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다음 이직처와 이야기가 잘 되어서 충분한 휴식기를 갖고 합류하기로 이야기가 되었다. 5주 정도 여유 시간이 생겨서 벼르고 벼르던 남미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작년에 아무 것도 구체화된 게 없던 시절에 남미 여행 계획을 몽상하며 무료한 일상을 달래던 기억이 임박한 현실이 되었다. 계획을 현실로 만드는 일은 설렙고도 놀랍다.
가이드북을 탐독하며 최적의 코스를 구상하고, 반드시 사전 예약이 필요한 항목들을 준비했다. 아마 앞으로 한 5년 동안 이렇게 장기 여행을 갈 일이 없을 것 같아서 귀찮음을 무릅쓸 가치가 있다. 페루 리마로 들어가는 항공기를 우선 예매하고, 마추픽추, 푼타 아레나스 행 항공기,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을 모두 예약했다. 트레킹 예약이 가장 힘들었는데 일정과 동선이 꼬여서 편도 항공권 하나를 버리게 되었지만 그걸 아쉬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남은 항목들을 마저 정리해야 한다. 오늘은 우선 볼리비아 대사관에서 비자 발급을 마무리 지어야 하고, 이번 주 안에 페루 리마와 쿠스코 숙소를 예약해야 한다, 마지막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돌아오는 비행기도 말이다.
변화는 언제나 설렘 뿐만 아니라 긴장을 동반한다. 약간 상기된 듯한 이 느낌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