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꽃이 핀다.

무소의뿔 2023. 3. 23. 09:13

오늘도 택시를 타고 외근을 나가는 길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외부로 나갈 일이 생긴다. 꽤나 업무가 바쁘게 돌아가는 요즘이라 정신이 없다. 낮에는 일에 매진하고, 저녁에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한 주가 참 빠르게 지나간다. 외근을 나가는 게 싫지만은 않다. 특히 아침 출근 시간과 묘하게 겹쳐서 외근지로 직접 나가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택시를 타고 편하게 이동하면서 일기도 쓰고 바깥 풍경도 잠시나마 바라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개나리가 핀 것쯤은 알고 있었는데, 목련도 폈다. 심지어 벚꽃도 피고 있다. 여의도를 지나는데 벌써 벚나무들이 화려하게 단장한 분홍빛을 뽐낸다. 4월은 되어야 벚이 만개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봄이 일찍 열려버렸다.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한데, 꽃이 이렇게 아름답게 피었다. 이른 봄비에 꽃잎이 일찍 져버리진 않았으면 좋겠다. 주말에는 꽃을 보러 나들이를 다녀와야겠다.

노량진을 지나며 비릿한 생선 냄새가 난다. 노량진에 서려있는 몇 가지 추억들을 문득 되짚어본다. 머물던 공간까지는 아니지만, 이래저래 기억이 많다. 가장 최근엔 1월에 친한 고등학교 동창 녀석들과 술 한잔을 기울였었다. 노량진에서의 기억은 주로 회를 먹은 기억들이다. 많이 먹고 많이 마셨다. 그 알콜들이 모여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지난 주말에는 자전거 동호회를 다녀왔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꺼내 공기압을 채우고 달렸다. 반포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게임을 하느라 늦어져서 집에서 반포까지 한 20km 정도를 자전거로 달려갔다. 반년만이다. 작년 늦여름과 초가을,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하겠다고 발발거리며 돌아다녔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기억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정보로 머릿속에 머무는 게 아닌가보다. 익숙한 공기, 익숙한 동작을 다시 취할 때 그때의 생생한 기억들이 살아서 꿈틀거린다. 참 열심이었구나. 아직은 조금은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한강변을 가로지른다. 뺨을 스치는 바람에 거친 숨결을 내뱉으며 2022년을 되짚어보았다.

주중에는 면접을 겸해서 한남동에서 변호사들과 저녁 식사 자리를 가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포부가 크고 열정이 있는 분들이었다. 한 분은 후드에 장발로 나타났는데 등장부터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두어 시간 대화를 나누다보니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고, Transaction 변호사로서 역량도 차고 넘쳤다. 까마득한 후배 기수인 나로서는 그저 경외로웠다. 예전 직장에서 그런 brilliant한 변호사들을 보며 존경심이 일었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덕분에 내 안에 열정도 다시 꿈틀거렸다. 다음 식사 때 최종적으로 내 합류 의사를 알려달라는 말과 함께 훈훈한 식사 자리가 파했다. 앞으로 남은 30대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슬슬 마음의 각오를 해야할 시점이 오고 있다.

이직이 잘 마무리되면 한 2주 정도 시간을 내서 유럽을 다녀와야겠다. 아직 가보지 못한 런던, 파리, 스위스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았던 인생이 조금씩 방향성을 찾아가는 듯해서 조금은 안도가 되면서도, 살짝의 설레임도 있는 그런 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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