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월요일 아침이다. 주말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시간이 빠르다. 금요일 퇴근하고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두시쯤 잠에 들어 열두시 즈음 일어났는데도, 토요일 하루종일 피로가 가시지 않았다. 12시 넘어서 일어나 4시쯤 겨우 헬스장에 다녀왔다. 대충 저녁을 챙겨먹고 빈둥대며 하루를 보냈다.
일요일 낮에는 오랜만에 연남동에 다녀왔다. 커피를 마시고, 점심으로 튀김요리와 온소바를 먹었다. 용산으로 이동해 기타를 하나 샀다. 14년 전 즈음에 용산아이파크몰에 아이러브뮤직인가 하는 이름의 악기 가게가 있었는데 그때 27만원 주고 어쿠스틱 기타를 하나 샀었다. 아이러브뮤직은 사라지고, 영창뮤직인가 하는 이름의 악기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어쿠스틱 기타는 입문자용 모델 하나밖에 없었다. 21만원을 주고 기타를 바로 샀다. 김밥도 2배 가격이 된 세월인데 기타 가격은 더 싸다는 게 이질감이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와 기타를 이리저리 만져본다. 최근에 기타 선율이 아름다운 곡들을 자꾸 들어서인지, 기타를 다시 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곤 했다. Sting의 Shape of my heart, Keren Ann의 Not going anywhere 같은 노래들 말이다. 한 시간 정도 기타를 튕기다가 5시쯤 낮잠을 청했다. 한 시간을 조금 못 채우고 일어나 뒤척이다가 저녁 약속을 치르러 밖으로 나간다.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고, 대화를 나눈다. 택시를 타고 돌아와 다시 잠을 청한다. 술기운이 몽롱하게 올라와서 노곤한 채로 금방 잠에 들었다. 술을 마시고 잠에 든 날은 수면 자세가 흐트러져서인지, 자고 일어나면 목이 결릴 때가 있다. 오늘이 그렇다. 찌뿌둥한 채로 일어나 담배를 한 대 피우며 빠르게 정신을 차려본다. 샤워를 하고 스킨과 로션을 바르고 드라이어로 머리를 대충 말리고, 오늘 먹을 닭가슴살과 탄수화물을 챙겨 집을 나선다. 노래를 들으며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고, 지하철 안에서는 모바일 게임을 한다.
지하철을 내리자마자 사이렌 오더로 커피를 주문한다. 오늘은 조금 피곤한 날이니까 그란데 사이즈를 마셔도 괜찮을 것 같다. 횡단보도를 지나 구석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스타벅스에 들러 주문한 커피를 챙겨온다. 사무실에 올라와 짐을 풀고 메일을 확인하고, 이런저런 교신을 한다.
이상할 것 없는 하루하루인데 이상하게 뭔가 충만감이 없다. 언젠가는 가슴 속이 가득 찰 정도로 뜨거운 것들이 내게도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무기력과 공허함의 마수는 봄의 초입에까지 온 지금에도 나를 괴롭힌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던가, 인생은 결핍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고통의 바다라고. 그랬었나,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할 때에는 사실 그에 도달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필연적 결핍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었던가? 그래서, 지금의 나는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하는 게 없어서 결핍이 없지만 그 반대급부로서 권태로운 것일까?
그런데, 사실 누구에게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지만, 나에겐 갖고 싶어하면서도 갖지 못한 게 있다.
그래서 지금 나의 공허함이 사실 권태에서 오는 것인지, 결핍에서 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뭐 둘 다로부터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갑자기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가 떠오른다. 위치를 파악하면 운동량을 알 수 없고, 운동량을 파악하면 위치를 알 수 없는 양자역학의 세계. 사람의 마음도 양자세계 같아서, 권태를 인지할 때 결핍은 숨겨지고 결핍에 신음할 때 권태의 씨앗이 발아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뭐 그런 것은 아닐지,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