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어린 시절의 기억 (2)

무소의뿔 2022. 8. 16. 10:38

배달을 하다 중학교 근처를 지나면서 옛 기억이 떠올랐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내 휴대폰이 생겼다. 지금이야 초등학생 어린 아이들도 휴대폰을 하나씩 꼭 갖고 다니지만, 나때는 휴대폰이 지금처럼 보급되기 전이었고(이렇게 말하니까 되게 늙은이 같다), 같은 반에도 휴대폰이 없는 친구가 있는 친구보다 더 많던 시절이었다.

누구나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선망의 대상이 된다. 그 전까지는 완강히 반대하던 아빠가 중3 여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급작스럽게 핸드폰을 사주겠다고 했다. 최신형, 고급형 모델은 아니었지만 꽤 만족스러운 모델이었다. 32화음 벨소리에(?) 16만 화소 카메라까지 달려 있는 폰이었다.

하지만, 핸드폰의 본질은 결국 '폰'에 있었다. 중3 짜리 남학생이, 그것도 남중에 다니는 더벅머리 남자놈의 전화번호부가 대단할 게 있을리 없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중3 때 내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는 27개 정도밖에 안 되었던 것 같다.

그랬던 것이 고등학교를 가면서, 대학교를 가면서, 로스쿨을 가면서 연락처가 참 많이도 늘었다. 지금도 1,000개 정도의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다. 하지만, 그 중에 전화를 하는 번호는 10개도 되지 않는다. 나의 세계는 팽창하는 듯하다 다시 작아지는 중이다. 무의미한 팽창이 주는 공허함을 이제 너무나 잘 알게 되었고, 줄어듦이 오히려 단단함이 되는 삶과 세상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나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