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어린 시절의 기억 (1)

무소의뿔 2022. 8. 16. 10:26

배민커넥트를 하며 동네를 이리저리 자전거로 헤집고 다니다 보면 좋은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잊고 있었던, 기억 저 편에 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불현듯 떠오른다는 것이다. 이미 십수년도 더 지난 오래된 일들이라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 완전히 잊고 살다가도 그 기억이 서려있는 장소를 지나칠 때면 갑자기 머리 뒤편이 저릿하면서 그 공간과 시간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경험할 때마다 참 신기하다.

나는 어렸을 때 강서구에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 지내다 4학년이 되면서 목동으로 이사를 왔다. 목동초등학교로 배정 받았는데, 오목교역 근처의 아파트에서 학교까지는 지하철 역사를 통과하여 작은 골목길을 내질러 걷는 5분 정도 거리의 길이었다.

배달을 하다가 그 골목길을 지날 일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골목길이라고 생각조차 못 했을만큼 넓고 큰 길이었는데, 지금 다시 지나보니 영락없는 골목길이었다. 길은 협소하고, 차량 교행은 가능하지만 빠듯한 정도의 폭이었다. 그런 길에서 어렸던 나는 군것질을 하고, 문방구 앞 오락기에서 게임을 하곤 했다.

동생이랑은 세 살 터울이어서, 등교는 같이 했지만 하교는 따로 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업 시수가 늘어나 더 늦게 끝나기 때문이었다. 동생을 데리고 등교하던 기억도 난다. 엄마가 건널목을 건널 때 동생 손을 꼭 붙잡고 가라고 했던 것 같은데, 어린 마음에 다른 친구들 보기가 꽤나 부끄러웠었던 것 같다.

한 번은 이런 경험도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하교하고 집에 왔다가 다음 날 준비물을 깜빡한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그 골목길에 있는 문방구로 갔다. 이름이 세종 문방구였던 것 같은데, 확실하진 않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문방구에서 준비물을 사고 돌아가려는데, 아뿔싸 슬리퍼가 끊어진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마침 선생님들의 퇴근 시간이었나보다. 수학을 가르치던 젊은 기간제 교사(지금에서야 기간제 교사임을 아는 것이지, 그때는 기간제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으니, 그저 선생님이었다) 여선생님이 다른 동료 교사분들과 함께 퇴근하고 있었다.

쌤은 내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아는 척을 했다. 하지만, 난 슬리퍼 한 쪽이 끊어져 발이 시커매져 있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게 왜 부끄러웠을까.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 뒤로 몸을 숨기며, 제대로 인사를 하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손만 들어서 반가움을 표했다. 돌이켜보면 꽤나 개념 없는 인사법이었지만, 쌤은 화를 내지도 않았고 오히려 웃었다. 다른 동료 교사들이 쌤한테 수근거렸지만, 참으로 쿨하게 "우린 원래 이렇게 인사해" 하면서 갔다.

그 쌤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안 난다. 담임 선생님도 아니었다. 아마 어린 마음에 그 쌤을 좋아했던 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내 추한 몰골이 부끄러웠나보다. 지금쯤 그 쌤은 마흔 중후반이 되었겠구나. 시간의 흐름이 참 무성하다. 그닥 특별할 것도 없는 그 기억이, 거의 20년 동안 잊고 있던 그 기억이, 갑자기 왜 불현듯 떠올랐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이유가 없어도 좋다. 어차피 삶 자체에 필연이 없을진대, 기억의 소환에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