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기록적인 폭우, 그리고 Gig Working

무소의뿔 2022. 8. 16. 09:52

지난 주, 서울엔 정말 너무나 많은 비가 내렸다. 115년만의 폭우란다. 다행히 월요일 나는 무사히 퇴근했지만, 강남과 신림 등 많은 지역이 침수가 되고 난리도 아니었다. 실시간으로 온라인에 올라오는 짤들을 보며 웃긴 것들도 있었지만, "Is it real?"을 연발하게 되는 장면도 많았다.

다행히, 내가 사는 동네는 침수 사태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예전 2011년 기록적인 폭우 때 오세훈이 배수능력을 확충할 계획을 세웠는데, 무상급식으로 시장직에서 물러나면서 프로젝트가 대부분 중단되었으나 다행히 우리 동네만 완료가 되었던 덕이라고 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양천구는 장마철만 되면 상습적으로 천이 범람하고 침수가 되는 곳이었다고 한다.

화요일 점심에 윗선으로부터 갑작스럽게 재택근무로 전환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 남쪽에서 출근하는 사람들은 제 시간에 맞춰서 출근을 할 수가 없었다. 도로는 파괴되고, 도시의 기능은 온전하지 못하였다. 내가 타고 다니는 5호선은 다행히 별 영향이 없었지만, 9호선이라든지 4호선이라든지 침수 피해로 지하철 일부 구간도 운행이 안 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갑작스러운 재택 전환은 내게는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어차피 업무에서 가장 힘이 드는 부분은 출퇴근이다. 출퇴근에 쓰일 에너지를 절약하여 유산소 운동에 투입한다면 Double Joy요, Double Happiness이다. 갑자기 늘어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다가, 한 번 Gig Working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약간은 그런 마음도 있었다. 어차피 비 내리는 출근길에 양말이 이미 다 젖어버리는 반복적인 상황, 출근하면서부터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비를 피할 수가 없다면, 아예 빗 속으로 뛰어 들어가 비를 즐겨보자. 젖음을 각오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젖음은 고통이지만, 젖음을 각오한 상태에서의 젖음은 즐거움이 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뭐 그런 것들의 변주라고 볼 수도 있겠다.

화요일 저녁에는 우비를 챙겨 입고 슬리퍼를 신고 배달을 나갔다. 진짜로, 빗 속을 달리는 즐거움이 있었다. 세상이 젖었고, 그 젖음 한 가운데에 나도 젖고 있었다. 돌아오니 마치 오랫동안 물놀이를 한 사람마냥 손이 불어 있었다.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비가 올 듯하면서도 끝내 제대로 된 비는 오지 않았다. 웃기게도 은근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어찌보면, 즐거움이란, 웃음이란 참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며 가변적이다. 비 근처에서 비가 너무 싫었던 나는, 비 속에서 비가 그리 싫지 않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