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마트의 폐업
내가 사는 아파트 뒤편으로는 언덕이 있다. 언덕을 중심으로 빌라가 밀집되어 있고, 조그마한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정확하게 사고해보자면 아파트의 서쪽으로 언덕이 있고 동쪽으로는 평지 그리고 그 위의 다른 아파트 대단지가 있는 것인데, 은연 중에 뒤편이라고 사고하는 것 같다. 공간이 사고를 지배한다는 게 이런 걸까?
애니웨이, 언덕 위에는 마트가 하나 있다. 원마트. 원마트는 우리 가족이 이 집으로 처음 이사 오기 전부터 그 언덕에 있었다. 어렸을 때는 엄마 심부름으로 식재료를 사러 자주 들렀다. 성인이 된 후에도 담배를 사러, 맥주를 사러, 주전부리를 사러, 아이스크림을 사러 자주 들렀다. 물론 밖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평지에 있는 편의점을 썼지만, 가끔씩 주말 같은 때에는 소소하게 이용을 자주 했었다.
그런 원마트가 최근 폐업을 했다. 자세한 속사정이야 나야 모른다.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였는데, 하기사 오래 하긴 했다. 원마트의 폐업은 정말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어차피 건물을 허는 것이 아니고 마트의 인테리어랄께 특별할 게 없으니 시간이 오래 걸릴 일은 전혀 아니다.
몇 주나 지났을까, 원마트가 있던 자리에 큼직한 GS25가 들어섰다. 단일 편의점 매장 규모로는 상당한 크기이다. 번화가 편의점처럼 협소한 것이 전혀 없고, 동선에 걸리적거리는 것도 없다. 매장 내부에는 간단한 취식을 위한 테이블까지 구비해 놓았다.
제품 라인업도 많이 바뀌었다. 원마트에서는 주로 4인 가구를 전제한 다양한 식재료, 간편식 등을 팔았는데, GS25에서는 2인 가구 또는 1인 가구를 위한 레토르트 식품과 냉동식품 그리고 와인과 같이 조금 더 트렌디한 상품들을 진열해두었다. 나야 뭐, 매일 같이 식단을 하는 사람이고 마트에서 살 것이라고는 담배밖에 없어서 달라질 게 없지만 말이다.
GS25 본사에서 철저한 상권 분석을 했겠지. 이 동네의 인구 구성이 어떻게 되고, 구매력은 어떻게 되며, 연령대에 따른 주요 소비 상품은 또 무엇인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세팅을 설계해 놓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매장 내부에는 원마트 시절에는 잘 보이지 않던 젊은 커플들이 꽤나 많았다.
원마트의 폐업에 내가 과도하게 감정을 이입할 필요는 없지만, 뭐랄까 한 세대가 저물고 새로운 세대로 교체되는 이행의 한 단면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이 있다. 그것은 내가 저무는 세대에 속한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주 약간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그런 형언하기 어려운 서글픔을 품고 있는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