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ma

우리들의 블루스 (2)

무소의뿔 2022. 6. 2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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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드라마 정주행을 했다. 나는 원래 TV를 즐겨보지 않는다. TV를 보는 시간이 아깝고, 그 시간에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드라마를 통해 어떤 삶의 교훈을 얻는다거나 발전의 원동력을 삼는다든지 이런 생산성이 있는 경우는 논외로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 경험상 드라마를 본다는 것은 일시적인 정서적 대리만족 외에 개인에게 큰 기여를 하지 못하는 행위이다. 더군다가 그러한 대리만족은 감정의 일시적 해소로 그칠 뿐이지, 한 인간의 발전에 기여하는 바는 미미하다. 오래된 생각이다.

내가 드라마나 유튜브 영상을 보는 때가 세 가지 있는데, 하나는 이동할 때이고, 다른 하나는 유산소 운동을 할 때이고, 마지막은 자기 전 30분 동안이다. 이동할 때, 예컨대 출퇴근길이라든지(이때에도 독서를 하면 참 좋을텐데, 그러지 못하는 나의 게으름이 아쉽다), 꽤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경우에 넷플릭스를 보는 경우가 있고, 헬스장에서 스텝퍼를 타면서 영상을 보는 경우가 있고, 자기 전에 잠들기 아쉬워서 보는 30분이 있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이런 쪼개진 시간 속에서 정주행을 마친 드라마이다. 근래 보기 드물게 정주행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드라마였다. 인물 간의 갈등 구도야 뻔한 소재였지만, 갈등을 풀어내는 과정이 울림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제주라는 특별한 배경을 설정해 둔 것이 참 기가 막힌 한 수 였다. 제주는 원자화되고 파편화된 현대 사회에서 아직 공동체로서의 형태와 기능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인물들은 그 관계성 속에서 상처 받고 상처 주지만, 결국 그 관계성 때문에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해 나간다.

가장 크게 감동을 받은 에피소드는 단연 '은기'와 '춘희'였다. 춘희의 아들은 돈 벌러 외지로 나갔다가 사고를 당하고 크게 다쳐 사경을 헤매인다. 자식을 여읜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슬픔의 크기를 과연 고두심이 아닌 그 누가 감히 연기할 수 있을까. 정말 아주 오랜만에 극중 인물을 따라 나도 울었다. 스텝퍼를 밟으며 떨어지는 것은 땀방울뿐만은 아니었던 것.

단연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은기의 믿음을 지켜주기 위해 푸릉마을 인근 배들이 집결하는 씬이었다. 어린 은기의 아빠는 사고를 당하기 전 은기에게 '제주에 가면 달이 100개가 뜨는 언덕이 있다'고 항상 말해왔었다. 춘희는 그런 어린 은기를 위해 사람들에게 부탁을 해 한밤중에 배를 띄워달라 하고, 은기 손을 부여잡고 언덕을 오른다. 태풍이 부는 궃은 날씨였지만, 거짓말처럼 날이 개었고, 거짓말처럼 수많은 배가 바다에서 빛을 띄웠다.

그 백개의 불빛이 내게는 춘희의 슬픔이자 어린 은기의 눈물이었고, 슬픔을 함께 극복해나가기 위한 공동체적 노력의 현현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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