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를 지나며
2022년 6월 21일이 하지였다. 하지. 일년 중 낮이 제일 긴 날이다. 동지에서 하지까지 하루에 약 1분씩 해가 일찍 뜨고, 1분씩 해가 늦게 진다. 반대로 하지에서 동지까지는 하루에 1분씩 해가 늦게 뜨고, 1분씩 해가 일찍 진다. 정확히는 초 단위이겠지만,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내용은 그렇다.
내가 하지를 특별히 기억하는 이유는 군 경험에 있다. 나는 육군 방공 병과를 수료하고, 비호 운용병이라는 보직을 맡았다. 야전 부대의 방공소대에 배치되었는데, 부대의 다른 인원들과는 다르게 방공소대는 일반 경계 근무를 서지 않고 개별적인 방공 근무를 섰다. 방공. Air Defence라는 말 답게, 우리의 근무지는 부대 막사 양 옆으로 펼쳐진 언덕이었고, 언덕에 배치해 둔 방공 무기를 작동시켜 대공 경계를 하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철책선 부대의 방공 부대였다면 아마 인원을 나눠 24시간 대공 감시를 했겠지만, 나는 후방 부대였고, 중대에 방공 소대원이라고는 꼴랑 10명이 전부였다. 그래서 우리 소대는 인원을 쪼개 취약시간이라고 부르는 특수한 시간대에만 대공 경계 근무를 섰다.
취약시간. 입대한지 10년이 넘은 지금도 취약시간만큼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9336이라고 줄여 외웠는데, 해 뜨기 전 90분, 해 뜬 후 30분, 다시 해 지기 전 30분, 해 진 후 60분을 말한다. 일출과 일몰을 기점으로 빛의 세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인간의 육안으로 하늘의 물체를 식별하기가 가장 어려운 시간대라고 한다. 우리는 이 취약시간에 경계 근무를 섰다.
동지에서 하지로, 겨울에서 여름으로 넘어갈수록 해가 길어진다. 바꾸어 말하면 여름이 다가올수록 근무 여건이 악화된다는 뜻이다. 군대에서는 저녁 식사를 마친 7시부터 9시까지 개인정비라는 일종의 자유시간이 있는데, 한여름에는 해가 7시 반쯤이나 되어야 지니, 취약시간 근무를 마치고 막사에 복귀하면 거의 9시가 다 되어 간다. 다른 소대원들이 자유시간을 보낼 때 방공 소대는 근무를 서는 것이니, 배가 아플 수밖에 없다.
일출 전도 마찬가지로 괴롭다. 6시에 해가 떠버리니 새벽 4시 반부터 경계를 해야 한다. 언덕을 오르는 시간까지 감안했을 때 한참 꿀잠을 자고 있는 새벽 3시 반에는 깨어나야 한다. 그러고 막사에 돌아오면 아침 점호까지 받고 3km 뜀구보까지 해야 했으니, 여름은 방공소대에겐 꽤나 힘든 계절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겨울이 깊어질수록 삶의 질은 개선된다. 우선 해가 7시에 뜨니, 일출 취약시간 근무 때문에 아침 점호에 참석할래야 참석할 수 없다. 당연히 3km 뜀구보도 없다. 또 해가 일찍 지니 공식적인 병영 일과 마치기 전에 이미 근무 준비에 경계 근무에 나가야 한다. 귀찮은 부대 내 잡일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취약시간, 9336, 동지에서 하지로 그리고 다시 동지로의 계절의 변화는 방공 소대원으로서의 나의 생활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였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일출일몰 시간을 출력해서 일출이 매일 몇 분이 늦어지고 일몰이 몇 분이 빨라지는지 꼭 확인하곤 했다.
군대에서의 경험 덕분에, 전역을 하고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느끼는 한 해의 흐름은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다. 대부분 바람이 얼마나 선선해졌는지, 공기가 얼마나 습해졌는지 따위를 기준으로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겠지만, 나는 해가 얼마나 짧아지고 길어졌는지를 기준으로 한 해를 바라본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주에 하지를 지났다는 것은 내게 어떠한 의미가 있다. 한 해의 가장 힘든 날이 이미 지나갔다는 일종의 메타포로 다가온다. 여름이 조금은 더 깊어지겠지만, 그 더위만 견뎌내고 나면 좋은 날이 올 것이다. 하지를 보내면서, 한 해의 절반을 보내면서, 힘들었던 날들을 뒤로 하고 보다 밝은 남은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넌지시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