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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집 -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무소의뿔 2022. 4. 21. 22:07

최근에 시집을 한 권 선물 받았다. 시와는 특히나 담을 높이 쌓고 살아온 나여서, 시를 읽는다는 행위가 참 어색했다. 시는 소설이나 다른 텍스트와는 다르게 한 행 한 행 곱씹으며 음미하며, 여유를 두고 읽어야 제 맛이다. 마치 차를 우리듯이 시간을 들여 공을 들여 읽어야 한다고 그렇게 배웠는데... 거의 무슨 씹어삼키듯 후다닥 읽어버렸다.

그건 나태주 시가 특히나 더 술술 읽혀서 그랬을 수도 있다. 나태주 시는 참 편하다. 복잡한 비유와 상징 없이 평범한 언어로 덤덤하고 차분하게 사랑과 그리움을 읊조린다. 나태주 시 중에 제일 유명한 풀꽃처럼 말이다. 시를 읽으면서 찾아보니 나태주 옹이라고 불러야 할 한참 어르신이었다. 나는 막연히 되게 젊은 청년 작가의 모습을 상상했었다.

시인이 살아온 간단한 약력을 확인하고 나니, 시의 맥락이 더 잘 이해되었다. 왜 자연과 사랑을 노래하는지 말이다. 그 소박한 자연의 작은 귀퉁이에서도 삶과 사랑에 대한 통찰을 찾아내는 시인의 안목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작가는 순간을 포착해 작품으로 남겨 영원히 박제해 두는, 일종의 박물학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좋은 시가 참 많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시 두 편을 소개하며 이만 짧게 글을 마쳐야겠다.

 

능금나무 아래

 

한 남자가 한 여자의 손을 잡는다

한 젊은 우주가 또 한 젊은

우주의 손을 잡은 것이다

 

한 여자가 한 남자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한 젊은 우주가 또 한 젊은

우주의 어깨에 몸을 기댄 것이다

 

그것은 푸르른 오월 한낮

능금꽃 꽃등을 밝힌

능금나무 아래에서였다.

 

 

그런 사람으로

 

그 사람 하나가

세상의 전부일 때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 하나로 세상이 가득하고

세상이 따뜻하고

 

그 사람 하나로

세상이 빛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 하나로

비바람 거센 날도

겁나지 않던 때 있었습니다

 

나도 때로 그에게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