푼주 (★★★☆☆)
4월의 마지막 날, 8호선 문정역과 장지역 사이에 위치한 한식 다이닝 '푼주'를 다녀왔다. 일전에 이 근처를 지나갈 때 식당이 있는 줄 전혀 몰랐는데, 그도 그럴 것이 건물 외부에 따로 간판이 없어 건물 안으로 진입해야 비로소 식당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보통 입구는 입구임을 알리기 위해 요란한 편인데, 푼주의 입구는 요란함이 전혀 없어서 한 눈에 입구를 찾지 못하였다.
별거 아닌 데서 고객은 감동한다... 지평 막걸리를 만드는 바로 그 회사에서 막걸리를 베이스로 한식을 모던하게 재해석한 음식들을 서빙하는 식당이라... 기대가 된다.
물가상승 때문에 최근에 4,000원이 올랐다. 그래도 다이닝 치고는 경쟁력 있는 가격이다.
내부 인테리어는 상당히 모던하다. 커튼을 둘러놓아서 밖에서 지나다닐 때에는 전혀 다이닝 공간이 있을 거라 상상도 못 했었다.
점심이지만, 막걸리를 베이스로 했다니 곁들임주를 아니 주문할 수 없다. 전통 방식으로 귀하게 빚은 막걸리라고 40,000원 전후의 가격이었던 것 같다. 확실히 2,000원짜리 아스팜탄 막걸리와는 깊이가 다른 맛이었다.
애피타이저로는 보리된장과 양배추가 나왔다. 보리된장 맛이 특히 훌륭했는데, 감칠맛이 제대로 돌아서 입맛을 돋우는데 제격이었다.
막걸리 효모로 발효시킨 지평바게트와 서리태 콩이 들어간 서리태콩버터가 다음 음식으로 나왔다. 바게트와 버터 자체는 훌륭했지만, 개인적으로 콩 특유의 서걱거리는 식감을 싫어하는 편이라, 서리태 콩을 갈아서 버터와 버무렸다면 어땠을까 싶다.
다음 요리로는 장어를 곁들인 계란찜이 나왔다. 플레이팅이 취향저격이었는데, 계란껍질을 그대로 살려둔 계란찜이라니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문득 콜럼버스가 떠오른다. 장어와 계란찜의 조합이 의외로 훌륭했는데, 마치 원래부터 하나의 음식인 것처럼 조화로웠다.
네 번째 요리부터 본격적으로 구성된다. 6가지 요리가 한꺼번에 나오는데, 가장 신선했던 부분은 병을 분리하면서 층층이 음식들을 플레이팅해내는 그 방식 자체였다. 병은 4층으로 되어 있었고, 길쭉한 목 부분에는 소스를 담아와서 부어주셨다. 먹는 재미와 보는 재미를 모두 잡은 코스였다. 시계 방향으로 보면, 쭈꾸미와 백목이버섯 그리고 당근 등 제철야채 한 입 샐러드, 앤초비로 맛을 낸 수프(?), 단새우와 안기모를 올린 부각, 연어와 크랜베리 그리고 감자로 층을 쌓은 마카롱, 사과칩이 나왔다. 가운데는 고급진 알새우집 맛이었다.
메인 코스로는 숙성 모듬회가 나왔다. 아쉽게도 사시미 자체는 평이했다. 우니도 엄청 신선하지는 않았고, 다른 횟감도 숙성 정도가 조금 아쉽긴 했다.
사시미 후에 입을 헹구는 느낌으로 솔잎주를 한 잔씩 주셨다. 알콜이 들어간 솔의 눈 맛이라고 표현하면 정확할 듯하다.
다음 메인 코스로는 새우전이 나왔다. 서양풍으로 다지고 살짝 볶은 토마토 위에 지단을 잘 묻힌 새우전을 올려서 메밀전병에 싸서 한 입에 먹는 음식인데, 가장 기억에 남는 맛이었다. 재료들의 입 안에서의 하모니가 매우 훌륭하였다.
다음 코스는 전복구이였다. 메뉴판에는 그라탕이라고 적혀있는데, 치즈가 느껴지긴 했지만 그라탕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부족했다. 전복버터구이의 고급진 버전 느낌이었다.
3가지 간단한 밑반찬이 나오고,
육개장 한 그릇이 식사로 나온다. 육개장에 마카로니가 들어 있었는데, 셰프의 설명에 따르면, 국에 떡이나 면을 넣어먹으면 그 맛이 깊어지듯이 서양에서도 수프에 마카로니를 넣는 경우가 꽤 있다는 점에 착안해서 육개장에 마카로니를 넣었다고 한다. 생각보다 이질감 없이 잘 섞여드는 맛이었다.
육개장보다 더 훌륭한 게 버섯밥이었다. 의외로 조합이 너무 훌륭했다. 솥밥처럼 지어낸 건 아닌데, 되게 솥밥처럼 조화로웠다.
지평생막걸리를 베이스로 한 소스를 부은 티라미슈로 다이닝 코스는 막을 내린다. 개인적으로 티라미슈의 부드러움과 막걸리의 톡 쏘는 느낌이 상극이라, 잘 어울리는 느낌은 아니었다. 이렇게 오랜만의 다이닝 후기를 마쳐본다. 큰 기대를 하지 않은 것치고는 구성이 나름 훌륭했던 푼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