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아버지의 은퇴

무소의뿔 2025. 3. 3. 21:43

지난 주 목요일, 우리 아버지는 오랜 교직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을 하셨다. 아버지의 퇴임을 축하하기 위해, 몇 주 전부터 꽤나 부산했다. 아버지에게 드릴 감사패를 제작하고, 지금보다 십 몇년은 더 젊었던 시절 학교에서 찍은 아버지의 사진을 프린팅한 케이크를 주문하고, 아버지에게 안겨드릴 카네이션 꽃다발도 맞췄다.

방학의 교정은 한산했다. 선생님들도 없다. 행정실을 분주히 오가는 교직원 몇 명만이 텅 빈 교정을 지키고 있다. 넓은 교장실이 오히려 휑하게 느껴진다. 아버지는 이 방에서 4년을 일했구나. 생각해보니, 아버지 환갑 때 맞춤 정장을 선물해 드린다고 같이 비스포크 샵으로 이동하려고 아빠의 학교를 찾았었다. 그게 벌써 2년이 더 지난 일이다. 예정된 일이었고, 예정대로 흘러왔다.

싫다는 아버지를 몇 번이고 설득해서 퇴임 기념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평소 학교 졸업사진을 찍느라 연을 맺은 업체에 따로 값을 치루고 교정의 여기저기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너무 오랜만에 아버지의 등에 손을 올려본다. 그 손길이 나 스스로 너무 어색해서였을까, 햇살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어서였을까, 자연스러운 웃음을 짓기가 어려웠다.

오후 4시. 이때부터 아버지는 공식적으로 자유의 몸이었다. 개학을 앞두고 마지막 결재를 마치고 아버지는 교정을 떠났다. 우리 가족의 축하를 받으며, 교감 선생님의 축하를 받으며, 행정실 직원들의 축하를 받으며, 아버지는 차에 올랐다. 학교를 나오는 아버지의 발걸음이 가벼웠는지, 일말의 아쉬움을 남기고 있었는지, 미처 보지 못하였다.

엄마와 아빠를 모시고 롯데호텔로 갔다. 몇 달 전 어머니 환갑 잔치 때 롯데호텔 무궁화를 찾았었다. 이번에는 중식당 도림을 예약해 두었다. 코스를 먹으며 그리고 가족 간의 대화를 나누며, 2월 27일의 밤은 깊어갔다. 평소에 살가운 자식이 못 되어서, 이벤트라도 잘 챙겨보자고 했던 게 벌써 굵직한 가족 행사를 몇 개나 치뤘는지 모르겠다. 어머니의 퇴직, 아버지의 환갑, 어머니의 환갑,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할 아버지의 퇴직까지.

아버지는 1987년 가을에 처음 교편을 잡으셨다고 한다. 2025년 2월에 은퇴를 하였으니, 햇수로만 따져도 39년이다. 내가 살아온 날보다도 더 긴 시간 동안 아버지는 선생님이었다. 그 세월의 무게를 나는 여전히 가늠하지 못한다. 청춘의 끝자락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나는 이제 일한지 7년차인데도 벌써 이리도 지겨운데 말이다.

아버지까지 이제 은퇴를 했으니, 이제는 진짜 어머니와 아버지 둘이서 행복하게 새로운 인생을 펼칠 시간이다. 벌써 11월에 떠날 남미 여행에 두 분은 들떠있다. 봄에는 지리산 둘레길도 같이 걸을 계획이라고 한다. 두 분이서 오래동안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인생을 그려나가면 좋겠다.

3월부터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해방감일까 묘한 허전함일까? 무엇이 되었든, 아버지의 새 삶을 응원하고 싶다. 여전히 부족하겠지만, 가끔은 좋은 말벗이 되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