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 100대 명산] [011] 동두천 소요산 2024. 8. 15. 목
맑은 하늘을 보기 힘들었던 고된 7월의 장마와 역대급으로 기억될 8월의 무더위 때문에, 거의 2달 정도 등산을 쉬었다. 광복절 연휴를 맞이하여 오랜만에 등산의 느낌을 되새기고 다시 100대 명산 프로젝트를 본격 재가동할 겸하여 소요산을 다녀왔다.
소요산은 서울에서 1호선으로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어서 좋다. 동두천까지 거리가 좀 있긴 하지만, 쾌적하게 올 수 있었다. 3시 반 정도에 도착했고, 무더위는 여전했다. 늦은 오후여서 그런지 등산객이 많지는 않았다.
멀리는 선녀탕까지 찍고 돌아오는 코스도 있지만, 이번 산행은 공주봉을 거쳐 의상대를 찍고 하산은 샘터하산로 코스로 오는 짧은 코스를 택했다. 돌이켜 하는 후회이지만, 하산도 그냥 공주봉으로 했어야 했다...
센터까지는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라서 걷기에 부담이 없다. 대신 아스팔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어마어마하다.
꽤나 귀여운 마스코트가 소요산 등산객들을 반겨준다.
자재암을 통과하는 코스여서 원래 2,000원의 입장료를 징수하는데, 공휴일이라 그런지 매표소가 폐쇄되어 있다. 2,000원 벌었다!
입구를 지나서도 아스팔트 길이 꽤 이어진다. 오른쪽으로 작은 개울이 있어서 피서를 즐기는 객들이 더러 있다. 물이 맑기는 한데, 그리 깊지는 않다.
'스스로 자'에 '존재할 재'를 써서 자재암이다. 스스로 존재하는 암자라니, 무슨 뜻일까?
이제부터 본격적인 임도의 시작이다. 소요산에는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애틋한 설화가 깃들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원효대사를 토픽으로 한 지명이 꽤 많다.
가는 길에 목줄이 없는 흑염소가 한 마리 풀을 뜯고 노닐고 있다. 검은색은 빛을 흡수하는데, 백염소보다 흑염소는 여름에 삶의 질이 더 안 좋을 듯하다.
이 앞까지가 완만한 경사로고,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으로 공주봉으로 오르는 길목이다. 앞에 벤치가 몇 개 잘 구비되어 있어 더위를 피하는 어르신들이 꽤 많았다. 확실히 숲이 햇볕을 잘 가려주어서 그런지 아스팔트 도시보다 더 시원하긴 하다.
1km 정도를 오르니 공주봉이 0.3km 앞이라는 반가운 이정표가 나타난다. 1km를 오르는 동안 정말 고역이었던 게 바로 날벌레와 모기였다. 모기는 한 번 타겟을 물면 포기를 모르나보다. 왼쪽 귀에서 윙윙, 오른 쪽 귀에서 윙윙, 몇백 미터를 쫓아온다. 정말 집요하다. 날벌레는 또 어떠한가. 날벌레는 이산화탄소를 좇아오나? 날숨을 따라 끊임없이 날벌레들이 내 시야를 흐린다. 허공에 손짓 한 번 하면 최소 3마리의 날벌레가 손바닥을 스친다. 체념하고 손짓을 아니하면 눈밑이나 눈두덩이에 내려 앉아 극심한 불쾌감을 일으킨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이정표도 날 화나고 슬프게 한다. 분명 300m는 족히 걸었는데, 공주봉 0.2km 이정표를 다시 봤을 때, 허공에 대고 복식호흡으로 욕을 아니할 수가 없었다. 정말 그 분노와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정도였다.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실제가 그러하다. 애플워치로 이동거리를 다 측정하기 때문에, 이정표가 거짓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땀을 비오듯 흘리며 공주봉에 올랐다. 그래도 봉우리에 오르니 바람이 시원하긴 했다. 하지만, 바람이 시원한 진정한 이유는 비가 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산을 오르기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작열하는 태양에 견딜 수 없는 더위만이 온 공기를 가득 채웠는데,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천지신명의 조화인가 말이다... 어쩐지 나는 공주봉을 오르면서 천둥 소리가 들리길래, 나의 오른쪽 하늘이 맑은 것만 보고 "음, 군사 훈련 중인가" 하고 생각했었는데, 천둥 소리였구나!
비를 맞으며 공주봉에서 잠시 동두천 시내 전경을 감상했다. 빗줄기는 금세 굵어졌다. 가방에는 노트북이 들어 있어서 몹시 불안했지만, 노스페이스 등산 가방이라 믿어볼 만 했다. 공주봉까지 올랐는데, 다시 내려가기는 너무 아쉽다. 의상대가 코앞이다.
1.2km만 가면 의상대가 나온다. 다행히 공주봉까지 오르는 길에 비하면 훨씬 수월했다. 능선을 타고 가는 길이어서 굵게 떨어지는 빗줄기만 제외한다면, 크게 어렵지 않은 구간이었다.
저기 보이는 봉우리가 바로 의상대이다. 딱 보기에도 늠름한 것이 기백이 훌륭하다.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에 반쯤 해탈해 버렸다. 이제는 즐기는 자 모드가 되어버린 것이다! 비가 와서 좋은 점은 시원하다는 것과 날벌레가 사라졌다는 것!
중간에 샘터길 하산로와의 교차로가 나온다. 하산을 바로 이 코스로 진행했는데, 이는 엄청난 패착이었다. 거리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공주봉으로 돌아갔어야 했다. 거의 돌무더기를 헤치고 하산하는 구간이라 무릎 부담도 엄청 났고, 심지어 비가 와서 돌이 미끄러워 한 걸음 한 걸음 신중을 기해야 해서 체력 소모가 컸다.
소요산 자체가 흙이 많은 산이 아닌데다가 정상으로 갈 수록 돌길이라 산행이 쉽지 않았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의상대에 다다를수록 비가 잦아들었다.
산행 1시간 반만에 의상대 정상에 도착하였다. 비 오는 한여름의 의상대는 한산하였다. 의가 상한다...
정말 얄궃은 날씨다. 비구름은 어느새 산 너머로 사라졌고 날은 갰다. 하늘이 보인다. 먹구름 위로 두툼한 하얀 구름도 보인다.
이 고생 고생 개고생 속에서 여름의 끄과 가을의 시작을 엿보았다면 과장일까? 의상대를 스쳐 부는 바람에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이리저리 의상대와 소요산을 둘러보며 정상에서의 여유를 만끽해 본다.
물에 젖은 생쥐 꼴이지만, 인증 샷을 아니 찍을 수 없다. 11번째 산행을 기념해 본다.
샘터길 하산로는 지옥 그 자체였다. 젖은 돌을 힘겹게 헤쳐나가며, 허공에 또 한번 소리를 질렀다. 걸어도 걸어도 흙길은 나오지가 않고, 자칫 넘어질까 매 걸음을 조심해야 하는 힘겨운 하산길이었다. 지금까지 여러 산을 다녔지만, 하산의 난이도로는 단연 최고봉이라 할 만 하다.
그래도 샘터길이니까 샘터가 있긴 하다. 시원한 샘물로 목을 축이니 한결 낫다.
샘터까지만 고생하면 다시 편안한 길이다. 이제는 다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햇살이 일주문과 그 주변 숲을 비추는 풍경이 고즈넉하다.
고생한 나를 위한 저녁. 소요산은 의외로 등산로 입구에 제대로 된 가게가 거의 없다. 역에서 가까운 백반집에서 제육볶음을 주문해서 먹었다. 이로써 100대 명산 프로젝트 복귀 산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