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또 한번, 운신을 앞두고

무소의뿔 2024. 5. 7. 17:34

어느덧 5월이다. 특별히 일이 바쁘지 않은 날들인데도 상당히 어수선하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3월 중순의 베이징 출장이 도화선이 되어서 나는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회사에는 이미 퇴사를 통보하였다. 다음주 금요일을 끝으로 나는 지금 회사에서의 근무를 마무리한다. 만으로 딱 1년하고 며칠을 더 근무하는 셈이다.

지금 회사를 이렇게까지 빨리 떠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이 회사에서의 시간을 더는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경영진 간의 대립으로 어수선해진 회사 분위기, 그 누구도 직원을 챙기지 않는 방임주의, 인간적 교류는 소멸하고 업무만이 남은 상황, 성장과 발전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어진 현주소, 이러한 것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했다.

본질의 차원에서는 그러한 요소들이 퇴사에 이르게 된 근원적인 이유가 되겠지만, 실행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몇 가지 개인적인 경험이 크게 작용하였다. 베이징 출장은 두말 할 것도 없고, 4월 중순에 또 한번의 사건이 있었다. 가끔 지방재판에 출정할 일이 있는데, 파트너가 전날까지 별 말이 없어서 나는 출석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부재중 전화가 수 통이 찍혀 있었다. 11시 평택 재판이니 지금 바로 준비해서 재판을 참석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황망했다. 서초동에서도 당일 재판 출석을 요청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비상식적인 요구였다.

그리고 그 파트너의 재판에서는 항상 변론기일 당일 새벽에 서면을 본인이 직접 작성하여 제출하느라, 나는 사실 법정에서 할 역할이 별로 없다. 그저 재판부의 욕받이가 되거나 상대편 소송대리인의 눈총을 받을 뿐이다. 그 역할을 하기 위해 나를 재판으로 보내는 것이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정장을 챙겨입고 SRT를 타러 수서로 가는 동안 불쾌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고, 법정에서의 질책은 그 기분을 분노로 승화시켰다. 이런 처우를 받으며 이 회사를 더 다닐 수는 없다. 그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퇴사를 통보하고 나서는 업무가 눈에 띄게 줄었다. 요새는 헬스와 피아노 그리고 골프를 하고 독서까지 이어가고 있다. 생각보다 일찍 백수가 된 느낌인데, 한달 정도는 더 일할 걸 그랬나 하는 약간의 후회도 있긴 하다. 하지만 큰 틀에서는 옳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직 퇴사 전이라 남은 잔업을 조금씩 처리하고는 있다. 그래도 물리적 여유는 넘치는 요즘이다.

대신 정서적인 여유가 없다. 나는 곁에 누가 있지도 않고, 어떤 조직에 속해 있지도 않다. 먼 바다에 홀로 뜬 쪽배와 같은 기분이다. 어딘가에 단단히 닻을 내리고 안정감을 느껴보고 싶다. 누군가가 나를 위로해주면 좋겠다. 나는 잘 하고 있다고,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 해나갈 것이라고.

일단 5월까지는 서울에서 체류하면서 일상의 평정 유지와 등산에 주력할 예정이다. 6월에는 2주 정도 제주도에 머물면서 생각을 정리해볼까 한다. 나의 앞날에는 어떠한 일들이 펼쳐질까? 나는 잘 해왔을까? 앞으로도 잘 해나갈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을 곱씹으며 하루하루를 닫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