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간의 북경 출장기
지난 주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 동안 북경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이라고 해봤자 북경에서 해야만 하는 거창하거나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업무 특성상 나는 특정 파트너 변호사와 긴밀하게 업무를 하는데, 그 파트너가 로펌 재직 시 유학을 중국으로 다녀오느라 중국에 고객도 좀 있고 친분이 있는 선배 변호사들이 있는 편이다. 어차피 회사가 재택 근무 중이니 이 기간을 활용해서 자신의 지인들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지려는 것이었고, 그 길에 그냥 나를 동행하자고 제안한 것뿐이다.
그러니까, 나의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별로 좋을 것이 없는 출장이다. 어차피 일은 노트북으로 하지만, 집 근처에서 편하게 일하는 것과 이역만리 타국에서 일하는 것은 다르다. 심지어 나는 중국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른다. 그리고, 일 외적으로도 성인 남성 둘이서 호텔 방 하나를 쉐어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넌지시, 내가 코골이가 심하다고 말해봤지만, 전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고된 여정이 될 것임을 각오하고 출발한 북경 출장이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은 자금성과 천안문 바로 근처의 Grand Hotel Beijing이었다. 전반적으로 연식이 있는 건물이긴 했지만, 내부 관리를 잘 해두어서 지내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불편함의 요소는 나의 맞은 편 베드에서 하루종일 일하는 파트너 변호사뿐이었다. 정말 일에 미친 사람 같았다. 침대에서도 일하고, 카페에서도 일하고, 택시에서도 일하고, 잠도 몇 시간 안 잔다. 그냥 삶이 일에 oriented된 사람 그 자체다. 나는 저렇게까지는 못 살겠는데... 옆에서 계속 일을 하면서, 나에게도 일을 뿌려대니 나도 편히 쉴 수가 없다. 심지어는 수요일에는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잠에 들었다. 나는 8시에 깼는데, 이 양반은 이미 7시에 일어나서 일을 하고 있었다.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저녁 식사는 잘 먹고 돌아다녔다. 지인들과의 식사 자리는 꽤 격식 있는 레스토랑에서 이루어졌다. 첫 날은 미슐랭 원 스타를 받은 '징야탕'에서 베이징 덕과 다양한 요리를 먹었다. 단연 베이징 덕이 일품이었는데, 한국에서 먹는 북경오리와는 차원이 다른 기름기와 바삭함이었다. 속살도 부드러워 맛있었지만 특히 껍질이 일품이었는데, 입 안에서 씹기도 전에 이미 껍질이 녹아 없어진다. 신기한 맛과 식감이었다.

둘째날은 광동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킹앤우드라고, 중국의 김앤장이라 칭할 만한 큰 로펌에서 한국 팀을 이끄는 변호사님과의 식사 자리였다. 그래서 요란하게 사진을 찍어댈 수가 없었다. 첫날은 가볍게 맥주만 마셨는데, 둘째날부터는 백주로 달리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백주를 저렇게 개인별로 계량컵에 나눈 후 다시 개인 잔에 각자 알아서 따라 마신다고 한다. 자리가 파할 때가 되면 계량컵을 들고 건배를 하며 원샷을 한다고 하니, 미리 틈틈이 많이 계량컵을 비워둬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리가 파하기도 전에 계량컵을 다 비운다면, 리필이 될 우려가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셋째날은 훠궈를 먹었다. 매운 걸 잘 못 먹는 나지만, 중국 본토의 훠궈는 땀을 흘리며 먹게 된다. 소고기, 양고기, 생새우, 천엽, 완자 등 다양한 재료를 즐겼다. 사실 백탕을 더 좋아하지만, 내게는 홍탕이 더 가까웠다. 다음날 상당히 고생을 하였다. 이날도 백주를 꽤 마셨다. '멍즈란'이라고 요새 잘 나간다는 중국 백주이다.

하지만, 모든 끼니가 훌륭했던 것은 아니다. 수요일 점심은 갑자기 약속이 생겼다면서 홀랑 나가버렸고, 나는 중국 편의점 샌드위치로 요기를 해야 했다. 이건 좀 경우가 아니지 않나...? 그래도 샌드위치는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목요일 저녁은 원래 둘이 식사를 하기로 했었는데, 고객과 약속이 잡혔다면서 돈을 쥐어주면서 떠나갔다. 역시 매너는 아니지만, 출장 4일차에 드디어 찾아온 짧은 자유가 소중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진짜 나는 적당히 일도 하면서 관광도 하는 일정을 생각했었는데, 매 일만 하다가 출장 기간이 다 지나갔다. 원래는 목요일 낮에 자금성을 들리려 했는데,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장이 불가했다. 그래서 베이징의 남대문 시장이라 할 만한 거리로 갔다. 물론 가서 스타벅스에서 일만 했다...

나에게 주어진 3시간의 자유. 목요일 저녁 드디어 베이징 거리를 맘 편히 거닐어본다. 딱히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 파트너가 추천해 준 치안멘 거리로 나아갔다. 넓고 곧게 뻗은 거리 양 옆으로 즐비한 상점가가 인상적인 명소이다. 밤에는 조명까지 화려해서 더욱 볼만하다.

베이징은 양회가 끝난지 얼마 안 되서 그런지 출입 통제가 삼엄했다. 구획을 지나갈 때마다 여권과 신분증을 검사한다. 이 거리의 끝에도 검문소가 하나 있었는데, 검문이 귀찮은 것은 중국인들도 마찬가지인지 검문소만 통과하면 사람에 시달리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출장 4일차의 저녁은 치안멘 거리의 현지 식당을 도전하기로 했다. 중국어를 한 마디로 할 줄 몰라서, 손짓과 발짓으로 대충 주문을 했다. 다행히 관광객이 많은 구역이라 메뉴판에 영어 안내가 병기되어 있었다. 돼지갈비찜과 현지식 부속 요리, 그리고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중국 일반 음식점에서 사 먹는 맥주는 히야시가 잘 안 되어 있는 편이다. 맛은 전반적으로 무난했다.

요기를 마치고는 상점가를 둘러보며 기념품을 살 만한 것들을 찾아본다. 확실히 중국 물가가 싸긴 싸다. 꽤 품질이 괜찮아 보이는 주전자와 찻잔 세트가 160 위안밖에 안 한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3만원 정도이다. 구글 번역기를 통해 구매의사를 표하고 바로 구매해 버렸다.

다른 기념품 가게에서는 주로 조잡한 상품 뿐이어서 마땅히 살 만한 게 없었다. 기념으로 택동이 형 초상화가 크게 인화된 장식물을 128 위안이나 주고 샀다.

밤에 호텔로 돌아온 파트너가 고객에게 받아온 선물이라며 마오타이주 귀주를 내게 주었다. 우리나라에서 구매하려면 면세점 가격으로도 45만원은 족히 하는 고급 술이다. 중국 8대 명주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술이라고 한다. 이 귀한 마오타이주가 베이징에서 인천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약간 샜다. 짭쪼름하면서도 알싸한 향이 난다. 이 선물 하나는 마음에 든다. 베이징 출장 다 별로였지만, 마오타이주 하나만큼은 인정한다. 고맙다!

이렇게 4박 5일 간의 베이징 출장이 마무리되었다. 이번에 한 번 갔으니, 이 회사에 있는 동안 다시 한 번 이 따위 출장 제안을 한다면, 그때는 반드시 거절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