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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 100대 명산] [001] 가평 연인산 2024. 2. 3. 토

무소의뿔 2024. 2. 5. 17:32

한가로운 주말을 맞이하여 오랜만에 다시 산행을 나섰다. 1월에 금산의 서대산을 다녀와지만, 사실 이번 산행부터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다. 기존에는 나 혼자 오르면 된다는 생각으로 산림청 기준의 100대 명산을 올랐지만, 이게 또 기록과 인증, 그리고 인정 욕구를 도외시하기는 참 어려웠다. 별거 아니지만, 블랙야크 100대 명산을 오르면 어플리케이션에 인증도 남기고, 나중에는 완주 패치도 살 수 있다는 게 묘하게 끌렸다. 그래서!!!! 이번 산행부터는 BAC 100대 명산을 오르면서, GPS 인증을 하면서 등산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오늘이 그 첫 번째 등정이다.

연인산은 가평군에서도 꽤나 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서울 강남구 기준으로 차로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여러 코스가 있지만 등정거리가 가장 짧은 소망능선 코스를 택했다. 백둔리 제2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간단한 준비운동과 함께 바로 등산을 시작한다.

저번 서대산 등산 때 아이젠이 없어서 하산할 때 꽤나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서 아이젠을 구매해서 챙겨왔다. 고무패킹으로 쉽게 탈부착이 가능한 모델인데, 생애 첫 아이젠 착용이다. 며칠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니, 아이젠을 신은 채로 산을 오르내리락했던 것이 발바닥과 하체에 꽤나 추가적인 부담을 주는 모양이다. 족저근막이 지금도 꽤 아프다.

이날은 영상으로 날씨가 꽤나 따듯했고, 차를 몰고 오는 동안 시선이 머무는 곳에 거의 눈이 보이지 않아서, 눈이 다 녹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허나, 영락없는 설산이었고, 정상까지 오르내리는 동안 거의 모든 구간이 녹지 않은 눈과 얼음에 뒤덮여 있었다. 아이젠을 챙겨오길 더욱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었다.

소망능선이 거리는 짧은데, 해발 200m 지점에서 1,000m가 넘는 정상까지 빠르게 내지르는 능선이다보니, 피로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날씨까지 따듯하니, 한겨울이 무색할 정도로 땀이 솟구쳤다. 몇몇 아주머니 등산객들으 반팔만 입은 채 걸음을 내딛는 나를 보면서, '청춘이다', '젊음이 좋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나는 나날이 노쇠해가는데! 그래도 기분은 좋다. 듣기에 거슬리지는 않는다.

침엽수가 빽뺵히 우거져 있어서 능선을 오르는 동안 풍광을 거의 볼 수가 없었는데, 정상에서 500m 정도 남은 지점에서는 드디어 식생의 빈 자리 너머로 산줄기들이 보인다.

빙질이 미끄럽지는 않았지만, 아이젠 도움을 톡톡히 봤다. 연인산 정상에 오르기까지 90분 정도가 소요되었는데, 너무 힘이 들어서 30분에 한 번씩 휴식을 취해줘야 했다. 몸을 분주히 움직일 때는 체열에 너무 더워서 고생했지만, 한 3분만 움직임을 멈추고 쉬면, 슬슬 추워오는 것이 아직 겨울은 겨울이다.

드디어 연인산 정산에 도달했다. 용추계곡이 물이 깊고 맑기로 꽤나 유명하다고 한다. 등산을 오후 2시 반이나 되서야 시작해서 정상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4시였고,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3시 이전에 하산을 마쳐서 정상에는 젊은 커플 한쌍밖에 없었다.

사나이 다운 반팔 등산 인증! 커플 분께 부탁해서 기념 사진을 남겨본다.

황량한 세기말적 감성이 넘쳐 흐르는 겨울산의 쓸쓸한 모습이다. 산줄기 사이사이로 눈이 쌓여 있는 모습은 흡사 마블링이 잘 된 좋은 육질의 고기를 연상시킨다.

왜 이런 짓을 했을까 싶지만, 유머는 주관적이니까. 그냥 묻고 넘어가기로 한다.

소망능선에서 산 밖의 풍경이 잘 안 보이는 이유. 정말 울창한 침엽수림이 꽤나 잘 보존되어 있다. 능선 경사가 가팔라서 그렇지 길 자체는 어렵지 않게 잘 나 있는데도, 오르는 길에 힘을 너무 많이 썼는지 다리가 후들후들거려서 발을 내딛기가 쉽지 않았다.

고속도로로 빠지기 전 마지막 집에서 왕갈비탕을 주문했다. 천마산 밑의 일호왕갈비탕은 더 저렴하고 더 맛있는데, 여기는 흠 좀 너무하다!! 하지만, 산행의 마무리는 역시 뜨끈한 국물이다. 이렇게 BAC 100대 명산의 첫 걸음마를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