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ain

[한국 100대 명산 정복기] [008] [서대산] 2024. 1. 12. 금

무소의뿔 2024. 1. 17.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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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차를 내고 일찍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충남으로 향한다. 8번째 등정 목표는 충남 금산의 서대산이다. 지도로만 보았을 때는 경기권에서 그리 멀지 않아보여서 서대산을 타겟으로 했는데, 막상 대전 근처까지 내려가야 하는 꽤나 먼 운전이었다. 11시쯤 도착해서 먼저 속을 든든하게 채우기 위해 마을의 순대국집에 들렸다.

각지의 순대국을 맛보는 것은 큰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이 가게는 기본적으로 공통 육수를 초벌로 삶아내고, 거기에 속재료에 따라 한 번 더 국물을 우리는 시스템인데, 서울에서는 먹어본 적이 없는 '새끼보'라는 부속재료가 있었다. 주문을 하고 나서야 알았는데, 돼지의 자궁을 새끼보라고 한다고 한다. 오소리감투와 새끼보로 육수를 낸 국밥을 주문해 본다. 사장님이 새끼보 맛이 꽤나 매니악하다고 했을 때 그냥 일반 순대국을 주문할 걸!!!!

어찌되었건 속을 든든히 채우고 등산을 시작한다. 내가 선택한 코스는 개덕사 뒷길로 해서 서대산 정상을 찍는 코스이다. 좌로 꺾으면 기상관측대를 경유해서 정상으로 가는 길이고, 개덕사에서 바로 정상으로 가는 길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서대산레저타운에서 출발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개덕사 뒤로 꽤 높이가 있는 절벽이 있고, 그 사이로 폭포의 흔적이 있다. 지금은 겨울이라 가물어서 물이 없지만, 유량이 풍성할 때 폭포가 꽤나 장관일 듯 싶다.

눈 내린 산사의 고즈넉함이란. 볕이 좋은 날이라 산행이 더욱 기대가 되는 점심 무렵이다.

1/3 정도 오르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가구가 몇 없어 황량한 느낌이다. 건너편의 산도 추위에 헐벗어서 민둥산 같다.

볕이 잘 드는 곳은 눈이 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좁은 길 양 옆으로 수북이 쌓인 낙엽이 발자취가 드문 산임을 말해준다. 실제로 서대산을 오르내리는 동안 5명 정도만 마주쳤다. 평일임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적은 숫자이긴 하다.

볕이 덜 드는 곳은 여전히 한겨울이다. 앙상한 발자국을 더듬어 길과 길이 아닌 곳을 살펴가며 조심스럽게 발을 옮긴다.

약수터에 도달했다면 절반 정도 온 셈이다. 300ml 생수 한 병을 들고 시작한 등정이라 급수 걱정이 조금 있었는데, 다행히 약수터가 있었다. 서대산이 해발고도 900m가 넘는 산이라 그런지, 눈길이라 그런지, 오르는데 꽤나 힘이 많이 들었는데 약수로 목을 축이니 한결 나아졌다.

바위 너머로 고드름이 길게 늘어져 있다. 중간에 길을 잃어 고생을 좀 했는데, 다행히 다시 발자국을 찾았다. 정말이지 어느 순간 내 앞에 더 이상 발자취가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을 때는 당황스러웠다. 돌아가서 다시 길을 찾아야 하나, 아니면 내가 새로운 발자국을 내딛어야 하나. 설마 아무리 인적이 드물다고 하더라도, 눈이 내린 이후 한 명도 이 길을 밟지 않았을까? 그럭저럭 길이 아닌 곳을 헤메가면서 다시 어지럽혀진 눈들을 마주했을 때의 기쁨이란. 길을 찾으며 하도 고생을 많이 해서, 괜히 고드름을 따러 가다가 다칠까 그냥 감상만 하고 말았다.

등산을 시작한지 두 시간 만에 드디어 서대산 정상에 도착했다. 절반만 눈이 녹아내린 돌무지가 인상적이다. 해발고도 904m로 충청남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한다.

서대산 정상에 오르니 대전까지 보인다. 사실 정확히 대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근방에서 아파트가 엄청 많이 솟아있는 도시는 내가 알기로는 대전, 세종 정도이다. 둘이 비슷한 방향이니까 대전 아니면 세종이겠지. 강원도의 험준한 산세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맛이 있는 등정이었다.

정상 옆에는 강우레이더 관측소가 있다. 우리나라에 총 5군데가 있는데, 충청 권역의 기상정보는 서대산의 이 관측소에서 죄다 수집한다고 한다. 세상에나, 강우레이더 관측소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는데, 홍보관을 나름 잘 만들어놔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게다가 비바람도 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관측소는 꽤나 귀엽게 생겼다. 지붕 위는 꼭 축구공 같다.

등산 때보다 더 위험한 게 하산 때라고 하던가. 눈길에 아이젠 없이 하산하려다보니 미끄러지기가 수 차례였다. 아끼는 메탈 시계줄에 기스가 나기도 했다. 서대산을 다녀오고 놀란 가슴에 아이젠을 급히 주문했다. 다음 등산 때는 필히 아이젠을 차고 오르리라! 하산을 마치고 개덕사에서 스트레칭이라도 좀 하려니, 몸집이 집채만한 진돗개가 목줄도 없이 나를 향해 짖어대는 것 아닌가. 바로 차에 타서 개덕사를 빠져나오고 마을의 카페에서 블루베리 스무디를 마시며, 그리고 저 너머의 서대산을 바라보며, 8번째 등산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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