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조금은 묘했던 하루

무소의뿔 2023. 8. 10. 21:02

한동안 평화로운 날들을 보내다가 오랜만에 야근을 한 날이었다, 어제는.

파트너 변호사의 급작스러운 제안으로 어쏘 한 명과 함께 셋이 근처 이자카야에서 가벼운 반주와 함께 저녁을 가졌다. 비싸고 양이 적고 맛이 훌륭한 가게였다. 생맥주 세 잔을 마셨다. 대화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기준 그닥 충만한 인간적인 소통이 이루어졌던 자리는 아니었다.

식사를 마치고 야근을 하러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골목길 어귀를 빠져나와 대로로 나가보니, 트럭이 새끼 고양이를 그대로 밟고 지나쳐 가고 있었다. 새끼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아스팔트 위로 핏자국이 새겨져 있다. 새끼는 생의 마지막 몸부림인듯 전신을 요동치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바로 근처에 어미와 다른 새끼가 있었고, 울부짖었다. 다른 차들이 또 다가올 때마다 새끼와 어미는 죽어가는 녀석의 곁에서 황급히 흩어졌고, 사람들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그 뒤로 지나치는 차들은 사태를 인지하고 피 흘리며 죽어가는 녀석을 밟지 않기 위해 애 쓰며 지나갔다. 운전자로서는 아마 바퀴를 조금 조정해서 새끼를 차 바닥 밑으로 놓인 채로 지나가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게 운전자의 최선의 선택이라는 걸, 일기를 쓰는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그때는 죽어가는 생명체 위로 지나가는 크고 육중한 고철 덩어리들이 뭐랄까 조금은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졌다.

용기가 없어서 새끼에게 다가가질 못했다. 왜 용기가 없었을까. 고양이의 피를 내 손에 묻히는 게 두려웠을까? 아니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나서서 고양이를 수습하길 은연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한 생명이 꺼져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서 급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에 놀랐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는 어미와 다른 자식의 모습이 애처로워서였을까? 나는 움직이지 못 했다. 그 사이 어떤 여성 분이 천으로 고양이를 수습해서 길 옆으로 옮겨 두었다. 그 사이 또 다른 여성 분은 119에 신고를 했다.

그때 내 머릿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사람이 아닌 동물에게 발생한 응급 상황에서도 구급대원이 출동하여야 할 법적 의무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어떤 생명이 꺼져가는 와중에 고작 드는 생각이 이따위 것이라니, 나 스스로를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고양이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다.

돌아와서 다시 야근을 했다. 중간에 쏟아지는 비를 뚫고 마곡에서 회사까지 친구가 따릉이를 타고 왔다. 유산소 운동을 할 겸, 저녁에 남는 시간도 죽일 겸, 자전거를 탈 겸해서 30km 거리를 달려 왔다. 친구에게 내 준 것은 보리차 1병, 게토레이 1캔, 담배 2까치 그리고 10분 정도의 시간이었다.

친구가 돌아간 이후에도 야근은 계속되었다. 3시에 드디어 일을 마치고 아래층에서 막 야근을 마친 후배 녀석을 함께 태워서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대학 초년생 때 보고 인연이 끊어졌었던 친구인데, 우연히 같은 회사에 비슷한 시기에 입사하게 되었다. 후배는 1년차, 나는 5년차이지만, 각자를 짓누르고 있는 생의 무게는 동일하게 무거울 것이다. 마침 방향이 같아 후배를 태워 먼저 내려주고 세시 반 정도에 집에 도착했다. 막바로 잠들기가 아쉬워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폰을 만지작거리다 네 시에 잠에 들었다.

그러니까 나의 하루는 그렇게 다소 어수선하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