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남미 여행 [Day.19]
23. 4. 28. 금요일
오늘은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보내는 여유로운 하루이다. 푸에르토 나탈레스는 특별히 할 게 없는 조용한 항구 도시라서 될 수 있으면 금요일에는 다른 도시로 이동하고 싶었는데, 비수기 시즌이라 그런지 교통편이 마땅치 않았다. 게다가 일요일에 미리 맡겨둔 세탁물을 찾고 Hotel Big Sur에 맡겨둔 짐을 찾느라 오전에 나탈레스를 비울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는데, 칼라파테나 우수아이아로 가는 오후 버스나 비행기 편이 전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금요일 하루를 더 나탈레스에서 쉬며 보내고 토요일 아침 7시 반 버스로 아르헨티나 엘 칼라파테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세탁물을 찾고 짐을 찾느라 아르마스 광장 주변을 부단히 돌아다녔다. 자고 일어났더니 다리 컨디션이 많이 좋아져서 일반적인 걷기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희한한 광경도 목격했는데, 한 남성이 다른 한 남성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내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아마 정황으로 봐서는 무엇인가를 훔치려다가 바로 눈치를 챈 피해자가 절도범을 제압하는 듯했다. 참 별에 별꼴을 다 본다.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이구나.

아르마스 광장과 경찰서가 서로 맞닿아 있어서인지 세탁물을 찾고 온 사이에 경찰이 금세 출동했다. 무슨 상황인지 너무 궁금했지만, 스페인어를 못하니 그냥 지나쳐 간다.

호텔에서 짐을 찾고 나탈레스 부두로 향했다. 어차피 모든 것이 다 작은 마을 안이기 때문에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하는 게 그리 멀지 않다. 부둣가인데도 비린내가 전혀 안 나고 특유의 바다향이 없다.

나탈레스 부둣가에는 인상적인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마치 바람에 날려가는 듯한 모습이다. 나도 저들처럼 가볍게 훨훨 날아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하는 동안 머리가 조금 자랐는지 이제 머리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 그냥 앞머리를 내리기로 했다.

늦가을 느낌이 물씬 나는 나탈레스의 쓸쓸한 거리를 사진으로 담아본다.

카페에서 엘 칼라파테로 가는 버스를 예매하고, 엘 칼라파테에서 우수아이아로 가는 비행기도 예매했다. 토레스 델 파이네까지는 미리 예약이 필요한 여행이라 일정을 짜는데 노심초사했었지만, W 트레킹이 끝난 이후는 개략적인 구상만 있고 완전히 자유롭다. 그래서 휴양 차 우수아이아로 바로 갈지, 아니면 조금 따듯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갈지, 그것도 아니면 칼라파테로 갈지를 많이 고민했지만, 교통 편의상 칼라파테를 가기로 결정했다. 칼라파테에 가서 모리노 빙하를 보고, 하루 날을 잡고 엘 찰튼으로 넘어가서 피츠로이 봉우리도 볼 예정이다. 이런저런 여행 계획을 마무리하고 점심을 먹으러 이동했다. ‘La Picad De Carlitos’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인데, 양고기가 맛있다고 해서 나탈레스에 머무는 동안 꼭 먹어볼 요량이었다.

생맥주와 양고기를 주문했고, 맥주와 빵이 먼저 제공되었다. 저 소스는 약간 시큼하면서도 짭잘한데 빵에 찍어 먹으니 제법 맛이 괜찮았다.

19,000 페소짜리 양고기. 양이 푸짐해서 성인 2명이 먹어도 될 정도이다. 나는 혼자 먹다가 너무 배불러서 결국 한 덩이를 남겼다. 토마토 샐러드가 사이드 메뉴로 함께 제공된다. 고기의 질은 훌륭했지만, 양 특유의 누린 맛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역시 양고기는 프랜치 랙 전문점에서 먹는 걸로!

느지막한 점심까지 먹고 세시쯤 오늘 하룻밤을 지낼 숙소로 이동했다. 여기서 밀린 여행일지를 쓰고, 침대에 누워서 쉬면서 하루를 보냈다. 밀린 일주일 치 여행일지를 쓰는데 시간이 꽤 많이 들었다. 창밖으로는 추적추적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이제 근처 펍으로 가서 가볍게 맥주 한 잔을 하고 일찍 잠에 들 생각이다. 오늘로서 칠레 체류는 끝이 나고 내일 아침 7시 반에 칼라파테로 넘어가는 버스를 탄다. 칠레 여행은 사실 산티아고나 푸콘 등 다른 멋진 도시가 참 많은데 토레스 델 파이네밖에 못 보고 돌아가서 조금은 아쉽긴 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또 기회와 인연이 닿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