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
이번 주는 낮기온이 16도가 넘는다. 낮에는 아우터 없이 거리를 돌아다녀도 될 만큼 날씨가 따듯하다. 봄이 성큼 온 정도가 아니라 봄 그 자체인 것 같다. 다음 주에는 다시 살짝 추워진다는데, 이번 주를 잘 만끽해야겠지.
어제는 오후에 반차를 내고 강남의 모 펌에 면접을 보러 다녀왔다. 저번에 면접을 봤던 회사보다 더 규모 있고 체계가 있어 보였다. 거마비로 스타벅스 상품권 3만원 어치를 주었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가 4,500원이니까 6잔을 먹고도 3,000원이 남는다. 아니면 그란데 사이즈로 깔끔하게 6잔을 먹어도 괜찮겠다.
면접 때 이런저런 질문들이 오갔는데, 별로 긴장은 되지 않았다. 딱히 긴장을 하지 않는 것이 내 장점인 듯하다.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운 답변을 못 한 것 같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내 생각이 잘 표현된 듯했다. 인연이 닿으면 연락이 오겠지 뭐. 합격 통보를 받아도 사실 진짜로 옮길지는 또 한번 고민해 봐야하는 문제이다.
면접 시간까지 여유가 좀 있어서, 회사를 나서면서 광화문에서 일하는 기자 친구를 잠깐 만났다. 담배 두 어대를 태우는 시간 동안 잠깐 환담을 나누고,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요새 아무런 열정도 의지도 없고 인생이 재미가 없다고 친구에게 하소연을 했다. 친구가 단호하게 그건 "늙어서" 그런 거라고 했다. 내게 11시에 집에 있는데 강남에서 여자들이랑 술을 마시자고 나오라고 했을 때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안 갈 것 같다고 답했다. 거기서 간다고 대답해야 젊은 거라고 한다. 이상한데 또 말이 되는 듯해 설득 당했다.
3호선을 타고 강남으로 넘어왔다. 역삼의 한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친구 얼굴도 잠깐 보고 갈까 했는데, 마침 회의가 길어져서 대신 영풍문고에 들러 기타 교습 책을 한 권 샀다. 10년 전 군대에서 열심히 기타를 치던 때 주로 참고했던 저자가 지은 책이었다. 판본만 다르고 동일한 책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카페로 이동해 책을 잠깐 뒤적이다가 면접을 치르고 왔다.
면접을 마치고는 강남역 다른 카페에서 대학 친구를 만났다. 작년에 석사를 마치고 오늘 모교에서 처음으로 언어교육원 강의를 마친 날이란다. 친구를 붙잡고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만나면 서로 헛소리만 나눈다. 그래서 친구가 아닐까 싶다. 점심을 제대로 안 먹어서 배가 고팠는지, 도너츠를 두 개나 주문해서 먹었다. 친구에게는 핸드폰 충전기가 없었고, 나에게도 없었다. 5% 남은 스마트폰을 들고 강남에서 집까지 이동했다. 사당 즈음에서 핸드폰은 완전히 방전이 되었고, 정신과 시간의 방을 거쳐 간신히 집에 도착했다.
저녁에는 수영 수업이 있는데, 핸드폰을 충전할 요량으로 집에 우선 들렸다. 보조 배터리에 USB 잭을 연결했는데도 핸드폰이 충전이 안 되었다. 잠깐 짜증이 치밀어서 수영을 가지 말까 싶었지만, 그냥 스마트폰을 집에 충전해 둔 채로 수영장을 다녀오기로 했다. 수영장까지 10분 거리를 걸어가면서 볼 게 없으니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었다. 그러고보니, 스마트폰이 없이는 몇 분도 버티기 힘든 그런 삶이다. 앞으로는 조금 더 오프라인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수영은 요새 평영을 집중적으로 배우고 있다. 자유형과 배영은 이제 꽤나 익숙한데, 평영이 참 어렵다. 한 달을 연습했는데도 몸이 시원하게 앞으로 나가는 느낌이 없다. 발차기가 아니라 마치 발버둥 같다. 그래도 40분 정도 수영을 하고 나니 몸이 개운한게 기분이 좋다. 물론 그 대가로 지금 너무 피로와 몽롱함에 휩싸여 있긴 하지만 말이다.
돌아와 간단히 저녁을 챙겨 먹고, 기타줄을 조금 튕기다가 게임을 두어 판 정도 했다. 요새는 모바일게임에 대한 흥미가 많이 떨어져서 어제는 별로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10시 반쯤 침대에 누워서 진격의 거인을 보다가 다른 친구랑 통화를 하다가 1시가 조금 못 되어 잠에 들었다.
봄인데, 봄을 그다지 만끽할 일이 없었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