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ain

[한국 100대 명산 정복기] [002] [마니산] 2022. 12. 25. 일.

무소의뿔 2022. 12. 25.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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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쯤 간신히 일어나 오늘 마니산을 갈지 말지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했다. 40분 정도 침대에서 밍기적거리는 시간을 갖다가 간신히 결심을 하고 일어났다. 후딱 샤워를 마치고 1시에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차를 오랫동안 운전하지 않아 엔진에 녹이 슬까봐 기름칠 좀 해준다는 생각으로, 근교로 드라이브를 간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집 근처 스타벅스 드라이브쓰루에서 아메리카노 그란데 사이즈를 하나 챙겼다.

마니산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에 너무 화장실이 급해서 눈에 보이는 아무 카페나 들어갔다.

마침 아무것도 안 먹고 벌써 2시가 다 된 시각이라 미숫가루를 하나 주문했다. 페트병에 대충 타 먹는 미숫가루가 아니라 유리잔에 이쁘게 내오니 미숫가루도 무슨 제대로 된 메뉴 같아 보인다.

이왕 먹은 김에 소금빵도 하나 샀다. 미숫가루가 6천원, 소금빵이 3천원이다. 친구가 소금빵이 너무 맛있다고 1일 1소금빵한다고 한동안 난리를 쳤었는데, 나는 소금빵 유행이 다 지나고 나서야 드디어 영접해 본다. 맛은 뭐 평이했다. 짭잘한 빵 맛이었다.

2시 40분 경에 마니산 입구에 도착했다. 주차를 마치고 올라가려는데, 한겨울이라 그런지 등산객이 거의 없어 한산한 분위기이다.

중턱에 기도원이 있는데, 기도원에 이르는 길까지는 제설이 마쳐져 있다. 아스팔트로 포장이 잘 되어 있고 제설도 잘 되어 있어 걷기에는 무척이나 수월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마주하는 설산의 풍경이 고즈넉하니 좋다.

제설된 포장 구간을 다 지나치면 이제부터는 흰 세상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발 밑에서 눈이 보스라지는 감촉. 뽀드득 소리와 함께 발끝으로 전해지는 이 감촉이 참 얼마만인지.

마니산은 계단이 잘 구비되어 있어서 등산 자체가 특별히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계단 한 단 한 단의 높이가 꽤 높아서 노약자나 어린이가 걷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나도 어떤 계단들은 높이가 꽤 높아서 한 걸음 떼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눈이 쌓여 있어서 중간중간 미끄러운 구간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왠만하면 겨울 산행에는 아이젠을 추천한다.

중간쯤 올라와서 뒤를 돌아보니 멀리 강화도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하이얀 눈으로 듬성듬성 뒤덮인 논이 이색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조금 더 높이 올라서 바라본 강화도와 서해의 이름 모를 여러 섬들의 전경. 겨울 산행만이 줄 수 있는 신선함이 아닐까 싶다. 처음 발걸음을 뗄 때 코 끝을 찌르는 듯한 추운 공기도 이쯤되니 익숙해진다. 몸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고, 뺨을 스치는 찬 공기는 기분 좋은 설렘으로 다가온다.

마니산 정상에 오르니 고양이 식구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 마니산의 진짜 주인은 너희들이었구나.

정상을 오르느라 몸이 더워져 외투를 모두 벗어놓고 반팔로 정상의 공기를 만끽했다. 고양이와 기념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원체 요염한 녀석들이라 쉽지가 않다.

고양이는 됐다. 나 혼자라도 이쁘게 기념 사진을 남기련다. 해발 472m 정도밖에 안 되어서 오르는 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산이다. 크리스마스에 개운하게 등산한다.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부탁해서 기념 사진을 찍었는데, 너무 짜리몽땅하게 나왔다ㅋㅋㅋㅋㅋ 우이씨...

참성단은 출입이 통제되었고, 그 옆에 마니산 정상만 등정이 가능하다. 정상에서 내려다 본 강화의 전경이 참 고즈넉하다. 저 논마다 마을마다 어떤 사연을 품고 있을까.

우연히 내 시야에 날아와 사진에 담긴 하늘을 나는 녀석이다. 안녕 반가워, 너도 나처럼 사연 많은 친구니?

서해쪽 풍경도 담아본다. 겨울 산과 겨울 바다를 한꺼번에 담을 수 있어서 좋았다.

설산은 등산보다 하산을 주의해야 한다. 등산화를 신긴 했지만 아이젠을 따로 안 차고 와서 자칫 미끄러질 수도 있다. 조심히 발을 내딛으며 산행을 마무리한다. 등산객 중에는 부부도 있고, 커플도 있고, 가족도 있고, 혼자 오는 총각, 아저씨도 있었다. 나는 혼자 오는 총각 정도라고 해두자. 산을 걸을 때는 온갖 상념이 떠오른다. 그러한 생각들을 두서 없이 전개시키다보면, 어느새 머리가 맑아져 있다. 결론을 내릴 필요도, 설명을 덧붙일 필요도 없다. 그저 생각들은 아무런 흐름 없이 떠오르고 다시 사라져가고, 무규칙적으로 박동한다. 그러다보면 산 하나를 넘는 것이다.

하산을 마치고 아직 일몰까지 시간 여유가 좀 있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아쉬워서 가까운 동막해변을 찾아 들렀다. 부서져 있는 얼음 덩어리 아래로 밀물의 차가운 바닷물이 밀려든다. 그리고 그 너머로 고즈넉하게 태양이 눈을 감는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넌 잘 하고 있어. 위로를 건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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