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지적 교양서 - 사피엔스
오랜만에 독서 활동을 재개했다. 세상에 책이 참 많지만, 읽을 만한 책은 의외로 많지 않다. 대단한 통찰이 있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막상 열어보면 그저 그런 정도의 뻔한 이야기인 경우가 참 많다. 정보의 바다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역량만큼 중요한 재능도 없을 것이다. 이럴 때는 괜히 무모한 새로운 도전으로 나아가기보다는 확실한 명저를 다시 읽는 게 훨씬 나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딱 그렇다.
내가 아직 20대일 때, 학생일 때 이 책을 처음 읽고 정말 기함을 토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단언컨대,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사피엔스' 이상의 통찰을 보여준 책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번에 두 번째 읽으면서도 8년이 지난 그 통찰이 여전히 유효함에, 아니 오히려 더 우리 세상을 날카롭게 해부한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사피엔스'는 기본적으로 역사서이다. 역사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본질을 조망한다. 흔히 역사서라 하면 한 왕조의 흥망성쇠나 특별히 영웅적인 개인들의 일대기를 떠올리는데, 사피엔스는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인간의 역사를 조망한다. 이 책은 겁 없이 역사학의 가장 궁극적인 질문,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가장 거대하면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유발 하라리의 통섭적 인식은 놀라울 정도로 날카롭다. 고고학, 인류학, 사회생물학,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심리학, 지리학, 종교학 등 인문과 사회 분과의 과학을 역사학의 틀로 용해시켜 하나의 일관된 스토리를 제공한다. 그러면서도 과하게 어렵지 않은 평이한 언어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고등학생 정도의 지적 수준이라면 책 내용을 소화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사피엔스'는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의 상위호환이라고 생각한다. 사피엔스의 주제 의식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하다. 인간은 실재하지 않는 상호주관적 질서를 믿는 인지적 능력 덕분에 오늘날과 같은 번영을 구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발명해 낸 최고의 상상의 산물인 돈, 제국 그리고 종교를 낱낱이 해부하며, 그러한 상상의 산물을 토대로 한 초거대 협력 사회의 출현을 설명해 낸다.
사피엔스와 짝을 이루는 한 권의 책이 더 있는데, 바로 같은 저자의 '호모 데우스'이다. 사피엔스가 인류의 과거와 현재를 조망한다면, 호모 데우스는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그려낸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아우르는 인문사회과학적인 통찰을 완성하려면 '호모 데우스'도 반드시 읽어야 한다. 물론 3년 전에 호모 데우스를 이미 완독했지만, 그때의 감동을 되새기기 위해 바로 또 밀리의 서재로 여행을 떠나야겠다.